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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왕국|우월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왕자들이 전국각지에 분산해서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알라신에 기도했다. …그후 제다와 메카에서 동시에 폭우가 쏟아졌다.』
이것은 80년11월8일 아랍뉴스지에 보도된 기우제 기사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신통력은 20세기에도 작용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오늘날 부유해진 것은 국민들이 신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우리국민들은 생각하고 있어요. 모든 것은 신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석유도 예외가 아닙니다』
미국과 영국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해외정보기관을 관장하고 있는 「투르키」왕자는 석유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태오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처럼 서구화된 인물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부와 개발문제의 복잡한 관계를 원시적인 종교적 신앙심으로 설명하는 것을 듣는 의국인은 미소를 금할 수 없다. 그러나 당사자인「투르키」왕자는 이런 설명을 하면서 웃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인들은 원래가 자부심 강하고 거만하기까지한 국민들인데 최근에 이룩한 부 때문에 그런 성향은 더 높아졌다.
염소털로 만든 천막에서 태어나 보잘 것 없는 식기와 침상을 유일한 유산으로 가졌던 어린애가 지금은 박사학위를 갖고 재상이 되어 몇시간이면 세계 어디나 갈 수 있는 자가용 제트기를 갖고 있다.
그런 기적적인 변모가 전적으로 서구의 힘으로 이루어졌지만 사우디아라비아사람들이 느끼는 자부심에는 변함이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를 발견하고 개발한 것은 서구의 기술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야심적 개발계획은 서구의 경제이론과 기술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호텔을 보면, 안내원은 모로코인, 세탁원은 태국인, 경영인은 레바논 아니면 미국이나 유럽인, 웨이터는 필리핀인인에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은 이들 모두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고 있다. 요리솜씨가 없다고 해서 자기가 부리는 요리사에 대해 열등의식을 가질 이유는 없다는 정도로 이들은 외국인 고용원들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고 있다. 그들은재산과 권력을 신이 준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신과 자기들 스스로만을 빼고는 누구에게도 고맙게 생각지 않을 뿐더러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인들이 얼굴을 가리는 차도르를 쓰고다니는 것을 보면 여성들은 완전히 종속적인 위치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부모의 유산을 받아 백만장자가된 여인도 수십만명에 이른다. 영국의 「엘리자베드」여왕이나 네덜란드의「율리아나」여왕이 가졌다는 전설적인 부를 능가하는 재산을 가진 여인들도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여러명 있다.
식수로 쓸 물을 얻기 위해 남극의 빙산을 끌어오겠다는 초현대적 발상이 나오는가 하면 주인공이 돼지라는 이유로 인형극의 비디오테이프를 수입금지하고 있다.
40년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고 사막생활의 금욕적 측면을 크게 찬양했넌「테지거」는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은 지극히 어려운 조건속에서만 최선의 성과를 성취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인들이 빠져든 천박한 물질주의를 개탄하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은 서구의 정신이 물질적 안일 때문에 크게 침식되었음을 인정은 하면서도 사우디아라비아인들은 20세기의 풍요를 맛보더라도 서구처럼 타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우리는 돈과 부를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돈이 많지만 돈이 진정한 부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돈을 신뢰하지 않고 신앙심이 강한 사람이 돈 많은 사람보다 더 훌륭하다고 믿습니다』 라고 「투르키」왕자는 말한다.
만약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신앙심이 20세기말까지 온존한다면 부가 몰려든 사회에서 종교가 부의 힘을 이겨낸 인류사상 최초의 예가 될 것이다.
금요일은 회교의 휴일이다. 이날 저녁이 되면 사우디아라비아의 길은 교통체증을 일으킨다. 이 때가 되면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은 온가족을 태우고 사막으로 나간다.
차들은 서로를 피해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 가운데로 나간다. 이들은 모두 사막속의 무의 공간을 찾아가는 것이다.
거기서 그들은 카피트를 깥고 피크닉을 즐긴다. 이곳이야말로 사우디아라비아인들의 고향이다.
사막은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 예컨대 그들의 종교라든가 관습·전통, 그리고 석유가 있는 곳이다. 이들은 자기들의 부가 가져다준 도시의 건물을 피해 이 무의 공간에서 위안을 찾는다.
해가 지평선에 걸리면 가족즐은 다같이 일어선다. 이들은 한줄로 서서 사막의 끝 없는 지평선을 향해 엎드린다. 기도시간이 된 것이다. 연강자가 『알라후·아크바르』라고 중얼거리면 모두들 따라서 복창한다.
『신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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