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외교의 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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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외교의 일원화 또는 외교창구의 통일이란 말이 자주 쓰인다. 대외관계에서 정부, 국회, 민간의 각계가 중구난방으로 한몫씩 하는 것이 반드시 나라에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며 자칫하면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하는 말이다.
구체적인 경우로는 박동선사건이 비정통외교의 필연적인 부작용이었다는 반성에서 외교의 일원화가 주장된다. 물론 일원화한 외교, 소위 정통외교의 주체는 외무부라는 전제가 붙는다.
그러나 우리가 상대하는 대부분의 나라들의 대외정책이 반드시 행정부주도로만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외교의 일원화, 정통외교의 강조가 자칫하면 우리의 손발을 스스로 묶고 외교채널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있다.
우리의 주요 우방인 미국, 일본의 경우를 예로 들더라도 대외정책의 수립과 수행에 의회가 행사하는 영향력은 막강한 것이다.
그 나라의 여론의 힘, 재계와 학계 그리고 종교계의 힘 또한 대외관계에 크게 투영되고 있음을 우리는 경험으로써 잘 아는 사실이다.
결국 외교의 일원화, 점통외교는 공허하고 비현실적인 수사에 불과하다. 그런 방식을 주장하는 외무관료들은 스스로의 매너리즘을 드러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3월말부터 시작되는 국희의원들의 대외활동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크다. 16개팀에 도합 80명이 참가한다니 규모로도 작지 않다.
그러나 출국을 앞둔 국회의원들에게 꼭 하고싶은 말이있다.
「공부」들 좀 하고 떠나고, 돌아와서는 형식적이 아닌 알맹이 있는 보고서를 내라는 것이다.
의원외교를 위노출장 비슷하게 생각하고 문자 그대로 「외유」로 생각하는 지난날의 자세를 철저히 떨쳐버리지 않으면 결국 정통외교의 타당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될 것이다.
과거에 국회의원을 유엔대표단에 끼워주면 정작 득표활동은 외교관들에게 일임하고 관광과 쇼핑에만 몰두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국내용으로 총회장의 방청석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사진을 찍는 것만은 잊지 않는다.
워싱턴서도 정계나 관계 인사들과 사진 한장 끽는 것으로 일은 끝나는 것이다. 일본서라면 저녁시간 요정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국회의원들은 그들이 외국에서 쓰는 달러가 수출전선의 용사들이 땀홀려 벌어들인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형편에 유유자적, 이국풍물이나 구경할 수는 없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국회의원들도 이제는 미국의 의원들처럼 의원외교라는 것을 하고 돌아오면 한국 외교에 도움이 되는 보고서를, 그것도 실속있는 것으로 내는 것을 제도화할 때가 되었다. 지금도 형식상으로는 그렇게 하고 있지만 내실이 없는데 문제가 있다. 「숙제」를 안하고 떠나는 외유면보고서도 내나마나다.
지금 북한의 외교공세는 한순간의 방심이나 정력과 시간의 낭비를 허용치 않을 정도다. 이런 점을 깊이 명심하여 상대국 지도층 인사들과의 접촉에서 많은 것을 얻고 짧은 것을 션명해야 한다.
현지에 도착하면 매사를 우리대사관 직원들에게 의존하는 습성도 고쳐야겠다. 외교관들은 관광안내원이 아니다. 그들도 바쁘다. 의원사절단은 우리 공관의 최소한의 도움으로 활동할 준비를 하고 떠나야 한다.
요즈옴 새시대, 새국회상이 자주 강조된다. 국회의원들의 자세가 과거와 다르다는 것을 의원외교에서도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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