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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란 채우고 나누고 누리는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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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호 19면

파리 시내 포부르 생토노레 112번지에 있는 5성급 호텔 ‘르 브리스톨’은 두 가지로 유명하다. 하나는 장미 컨셉트. 호텔 외벽 곳곳을 장식한 장미 넝쿨이 고풍스러운 멋을 더한다. 중앙 정원도 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가 뛰어나올 것처럼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또 하나는 이 정원을 내다보게 지어진 호텔 레스토랑 ‘에피퀴르(Epicure)’. 프랑스인은 물론 해외 여행객들에게 소문난 미슐렝3스타 맛집이다. 이 레스토랑을 진두지휘하는 셰프는 프랑스 요리 거장 에릭 프레숑. 프랑스에서 그는 ‘테루아(terroir) 퀴진의 오마주’라 불리운다. 와인 용어로 친숙한 테루아는 흙을 뜻하는 ‘테르’에서 파생한 말로 토종 농산물을 의미한다. 그러니 우리 말로는 ‘프랑스 전통요리 장인(匠人)’쯤 되겠다. 지난 16일(현지시각), 에피퀴르 주방 한가운데 유리로 지어진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프랑스 전통요리 장인 에릭 프레숑

유리 집무실이 독특하다. “주방에 요리사만 30명이 넘는다. 곳곳에서 진행되는 요리 진행 상황을 한눈에 내다보기 위해 만들어졌다. 프랑스 대형 레스토랑에는 중앙 유리 집무실이 있는 곳이 많이 있다.”

에피퀴르에서 제공되는 전채(1), 본식(2,3번), 후식(4,5번)의 일부.

대형 주방을 지도하려면 요리사보다 경영자에게 가깝겠다.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점이 ‘지금 서빙하는 이 접시에 미슐렝 3스타의 면모를 담으려고 노력하라’라는 점이다. 바빠서 별다른 취미 활동도 하지 못한다. 유일하게 즐기는 일이 요리 관련 책을 읽는 것이다. 요리가 내 삶의 모든 것이다.”

프랑스가 미식 문화의 중심이 된 이유는 뭔가. “특정 국가의 문화를 세계 최고라고 말해선 안 된다. 개인마다 취향이 다르듯 문화도 서로 다를 뿐이다. 다만 세계인들이 프랑스에 요리나 식문화를 배우러 오는 이유는 프랑스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재료로 쓴다고 할 만큼 전통문화요리가 발달돼 있기 때문이다. 또 기후가 좋고 남부·북부가 해안가에 접해 식재료가 풍부한 게 원인이다.”

요리에 대한 철학은 뭔가. “음식에는 3가지가 있다. 배를 채우기 위한 것, 식탁에서 가족이나 지인들과 나누기 위한 것, 그리고 기쁨을 누리기 위한 것이다. 요리사는 음식을 통해 타인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다. 손님이 식사하면서 음식을 즐기는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면 그곳은 실패한 레스토랑이다”.

손님이 어느 정도 기쁨을 느꼈는지 알기 어렵지 않나. “셰프만이 갖고 있는 감이 있다. 손님들 눈빛을 보면 즐거움의 강도를 알 수 있다. 요리를 완성하기까지 들인 땀과 노력에 대한 존경심이 배어나는 따뜻한 눈빛은 감춰질 수 없다.”

프랑스에서는 셰프에 대한 존경심이 남다른 것 같다. “엄마나 할머니에 대한 존경심이 있다면 셰프에 대한 존경심이 있어야 한다. 전문적인 요리든 가정식 요리든, 요리하는 이는 먹는 사람의 즐거움을 생각하면서 만든다. 그 마음에 감사해야 하고 존경심을 드러내야 한다. 한국에서도 주방에서 일하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높아지기 바란다.”

글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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