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에볼라 대책 5무1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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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 환자 발생으로 미국 뉴욕이 비상이다. 2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와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감염ㆍ의심환자와 접촉한 후 귀국한 모든 의료진과 여행객들에 대해 에볼라 최대 잠복기인 21일간 의무격리 명령을 발동한다”고 밝혔다.

이는 서아프리카 기니에서 의료 활동을 한 뒤 뉴욕으로 돌아온 미국인 의사 크레이그 스펜서(33)가 전날 에볼라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후 내려진 조치다. 스펜서는 귀국 후 맨해튼의 공원을 산책하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것으로 알려져 뉴욕 시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보건당국은 그의 약혼녀와 친구 2명을 격리 조치했다. 스펜서는 현지 의료 활동 중 감염 방지를 위한 장비를 착용했지만 에볼라에 감염됐다.

NMC 간호사들이 돌본 남아는 에볼라 아닌 것으로 판명
최근 우리 국정감사 현장에서도 에볼라 관련 지적과 우려들이 쏟아졌다.

지난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선 국립중앙의료원(NMC) 이종복 진료부원장은 “국내에 에볼라 환자가 발생했을 때 투입될 NMC 감염내과 소속 간호사 4명이 사표를 냈다”고 밝혔다.

사표를 제출한 간호사 4명은 지난 8일 에볼라 감염이 의심되는 시에라리온 국적의 17개월 남아 환자를 돌 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남아는 고열 증세로 NMC에 입원, 에볼라 감염 검사를 받았지만 에볼라 환자는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NMC 신형식 감염관리센터장은 “의료진들에게 보호 장구를 착용하게 했지만 마침 미국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환자를 치료하던 간호사가 숨진 직후여서 간호사들이 과도한 공포를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사태가 비화되자 NMC는 23일 “사직서 제출은 병동 업무 특성상 지난 수개월간 심리적ㆍ육체적 피로 누적 등 일신상의 사유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해명했다. NMC는 또 “간호사들이 에볼라 공포 때문에 사직했다는 보도를 접한 뒤 유감스러워 했다”고 전했다.

에볼라 환자가 국내에 입국했다고 가정해 보니…
만약 에볼라 환자가 우리나라에 입국했다면. 그리고 그 환자가 열이 나서 병원을 찾아갔다면.

입국 당시엔 고열ㆍ출혈 등 에볼라의 증상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므로 항공기 안이나 공항 등에서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확률은 거의 없다. 에볼라는 증상이 나타난 뒤에 타인에게 감염되기 때문이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났겠지만 호흡기 전파가 이뤄지진 않는다. 에볼라는 환자의 혈액ㆍ체액 등을 직접 만져야 옮겨지므로 병원의 의료진ㆍ행정 인력 등의 감염 확률도 매우 낮다.

그러나 만약 환자가 증상이 심해져 출혈 상태로 병원에 갔다면. 그때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환자의 간호나 이송을 위해 접촉한 환자 가족·의료인 등의 감염 위험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의 출혈에 대처하기 위해 애쓰다 환자의 혈액이나 체액에 노출된 의료인의 감염 위험성이 있다. 물론 이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늘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은 방역(防疫)의 기본.

에볼라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 상태는 5무(無)1유(有)로 요약된다.
1무(一無)는 에볼라 환자가 국내에서 발생했을 때 이를 다룰 전문 격리 병상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이다.
국립암센터 기모란 박사(예방의학)는 “국내엔 국가 지정 격리병상을 운영하는 병원이 17곳 있지만 인플루엔자 같은 호흡기 감염병을 가정해 만든 시설”이며 “에볼라처럼 혈액ㆍ체액 등으로 전파되는 경우를 고려해 환자가 격리된 곳에서 환자의 혈액·체액 등 모든 가검물을 검사할 수 있도록 설계된 병상은 아직 없다”고 지적했다. 기 박사는 “에볼라 환자의 가검물이 환자의 격리 병상 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 국내에선 격리 병상에서 채취한 환자의 가검물을 격리 병상 밖으로 보내 검사해야 하는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환자를 한 공간에 격리시킨 뒤 여기서 치료·검사가 함께 이뤄진다. 우주복 같은 감염방호복을 입은 의사와 검사 전문가가 같은 공간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각종 검사를 실시한다. 이때 의료진과 검사 인력은 감염방호복에 달린 공기 튜브를 통해 외부 공기만으로 호흡한다.

에볼라 환자를 다루는 의료진의 방호복과 방호장비도 부족한 형편이다. 미국 병원은 의료진의 복장 등 장비를 잘 갖추고도 간호사가 감염됐다.
2무(二無)는 에볼라 환자를 치료해야 할 격리 병실이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적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등 ‘눈 가리고 아옹’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배재정 의원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서울대병원장ㆍ부산대병원장ㆍ전북대병원장 등 국립대병원장들에게 에볼라 국내 유입 시 확산 방지대책과 에볼라 환자 격리병실 운영 현황을 물었다.이에 병원장들은 누구도 속 시원한 확산 방지대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만약 에볼라 감염자가 국내에 들어온다면 확산 방지가 가능하냐”는 배의원의 질문에 정대수 부산대병원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는 2차 접촉자를 치료할 병실을 비워놓은 정도”라고 답했다.

배 의원은 “제주대병원엔 24개 (격리) 병상이 있으나 현재 일반 환자가 사용 중”이며 “이것이 감염병 환자 국가 지정병원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에볼라 진단은 가능
3무(三無)는 국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분리된 경우 이를 다룰 전문 실험실이 없다는 것이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가장 높은 단계인 생물안전 4등급(Bio-safety level 4, BL 4) 실험실에서만 다뤄야 하는 병원체다. 병원체가 외부로 유출될 경우 그 피해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BL4 실험실은 별도 설계된 독립 건물로 짓도록 돼 있다. 샤워실이 반드시 필요하고 방호복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아직 국내엔 BL4 실험실이 없다. 빠르면 내달엔 충북 오송에 BL4 실험실이 완공될 예정이지만 주변에 격리 병상을 운영 중인 대형 병원이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 상황에선 이보다 낮은 단계인 BL3 실험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기모란 박사는 “당분간 BL3 실험실을 이용하되 최대한 실험자의 안전을 보장한 상태로 에볼라 바이러스를 다룰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4무(四無)는 에볼라에 대한 대국민 홍보가 부족하다는 사실.
기 박사는 “대중이 병을 잘 모르고 두려움만 갖고 있다면 방역이 힘들어진다”며 “모든 상황에 대해 국민들에게 실시간으로 솔직하게 알리는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대로 된 의사소통, 질병에 대한 이해는 불필요한 불안ㆍ공포ㆍ과잉 반응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란 것이다.

5무(五無)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안고 있는 문제로, 에볼라 치료제와 예방백신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승인 하에 ‘ZMapp’이란 약이 에볼라 환자에게 투여됐지만 대량 생산이 힘들고 효과가 들쑥날쑥하다는 것이 약점이다. ZMapp을 접종한 미국인 환자는 에볼라에서 벗어났지만 스페인 신부와 라이베리아 환자는 숨졌다. 게다가 호주산(産) 담배 잎을 유전자 변형시켜 만든 ZMapp은 이미 바닥났다.

기 박사는 “바이러스 치료 유전자를 가진 담배를 생산하려면 최소 8개월은 걸린다”며 “대량 생산할 수 없어 크게 기대를 걸만한 치료법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흡연이 에볼라 치료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물론이다.

에볼라에서 회복된 사람의 혈청을 뽑아 그 혈청을 이용한 치료도 한다. 하지만 역시 효과가 불분명한데다가 환자가 대량 발생했을 때 그 수요를 맞추기 힘들다는 것이 맹점이다.

특별한 치료제가 없는 현실에서 에볼라 환자가 받을 수 있는 최선의 치료는 열·출혈 등 증상을 완화하는 대증(對症)치료다.

1유(一有)는 국내에서 에볼라를 진단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진단검사를 위한 예산을 확보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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