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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포럼

카트 라이더와 승부근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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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카트 하시는 분."

인터넷 게임인 '카트 라이더(Cart Rider)'가 전국을 달구고 있습니다. 귀여운 인형 운전자가 변기.유모차.거북이 모양의 앙증맞은 차를 몰고 경주를 합니다. 조작법이 쉬워 더 인기입니다. 적잖은 인터넷 게임은 피 튀는 전쟁을 해야 하지만 이 게임은 코믹해 져도 재미가 있습니다. 3~4분이면 끝나 부담도 작고 승부욕을 자극합니다.

인터넷 게임과는 거리가 있던 여성의 참여율이 35%나 됩니다. 게임은 10대의 오락이었으나 카트 라이더는 이용자 중 20대 이상이 57% 선이어서 '국민 게임'이 됐습니다. 회원 수 1200만 명이니 국민 4명 중 한 명은 이 게임을 합니다.

학교와 직장, 집, PC방에서 동시에 평균 22만 명이 카트를 합니다. 지난해 9월의 학교 대항전에는 초.중.고교와 대학의 95%인 1만2000여 개 학교에서 100만 명이 참여하는 열기를 보였지요.

걱정도 큽니다. 만사 제치고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지요. 학생들이 공부를 안 하는 원인이 되니 부모들은 속이 터집니다. 일부 게임의 폭력성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문화현상입니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한국을 대표하는 정보기술(IT) 경향으로 싸이월드(개인 미니 홈페이지)와 카트 라이더를 지목했을 정도입니다.

인터넷의 올 상반기 인기 검색어에서도 '카트 라이더'가 지난해 1위였던 '로또'를 제쳤습니다. 상위 10개 검색어 중 9개가 인터넷 게임과 관련 있었지요.

인터넷 게임은 'e-스포츠'라는 공식 명칭을 얻었고 한국은 그 종주국입니다. 세계대회를 우리가 주관하며 제패하고 있고, 임요한 등 프로 게이머들은 아시아의 스타입니다. 한국 게임의 수출은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한국 게임이 중국 시장의 90%를 차지했습니다.

지난해 7월 부산 광안리에서 열린 인터넷 게임 결승전에 10만 명이 몰리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느 스포츠 행사도 모을 수 없는 관중 규모였지요. 세계는 한국의 e-스포츠 열풍에 놀라고 있습니다. 최고 인기 연예인의 팬 카페 회원 수를 훌쩍 뛰어넘는 수십만 명의 팬을 갖고 억대 연봉을 받는 프로 게이머들, 대기업과 정부의 활발한 지원, 게임 TV의 성황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입니다.

우리의 e-스포츠 경쟁력은 한국인 특유의 승부근성 덕이 크다는 생각입니다. 지고는 못 배기는 근성은 세계 최고라 할 골프 열풍, 도박 열풍, 대학입시 과열 등을 불러왔고 바둑, 스포츠, 인터넷 게임 강국이 되게끔 했다고 봅니다.

카트 라이더의 성공도 곳곳에 승부근성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잘 배치된 때문입니다. 장갑 색깔로 표시하는 7개의 등급을 두어 상위 등급을 따기 위한 경쟁을 유발하고 물풍선 등 도구로 상대방을 다이내믹하게 견제할 수 있게 합니다. 다양한 난이도의 코스가 있고 1등을 한 사람이 방장 역할을 맡게 합니다.

인터넷 게임에는 명암이 엇갈립니다. 카트 라이더는 올해 일본.중국.대만 등에 수출됩니다. 문화관광부는 올해를 e-스포츠 산업화 원년으로 선언하고 지원을 다짐했습니다. 사회적 폐해를 줄이는 시책도 펴면서 국력 신장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작업이 시작돼야 합니다.

부모들도 자녀가 몰두하는 게임이 무엇인지를 대화로 이해해 보고 자녀의 게임 욕구를 적절히 조절하는 솜씨를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60~70년 뒤에는 80대 노인 모두가 인터넷 게임을 하는 세상이 올 듯합니다. 손과 머리를 쓰니 '치매 예방의 명약' 소리를 들을 것도 같습니다.

김일 디지털담당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