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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의무실 제대로 갖춘 곳 드물다 시설·운영 등 실태를 살펴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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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직장인들의 건강을 위해 사업장안 의무실이 필요하나 제대로 갖춘 곳이 드문 실정이다. 의무실은 사소한 질환을 치료하거나 중대한 질환을 미리 발견할 수 있다는 예방의학 적 측면에서 매우 필요한 시설이다. 종업원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은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므로 사업주로서는 의미 있는 투자가 될 수 있으나 대부분의 사업장은 이를 소홀히 하고 있다. 가톨릭 의대 이승한 교수(산업의학)는 사업장의 보건을 ▲예방 ▲치료 ▲재활의 측면으로 구분하고 현재법으로 의무화하고 있는 것은 예방적 측면뿐이라고 밝혔다.
근로기준법 72조에 따르면 종업원 3천명이하의 사업장에는 1명 이상의 보건관리자(의사) 및 113명 이상의 보건요원(간호원·의료기사 등)을 두고, 종업원이 3천명을 초과할 때는 2명 이상의 보건관리자와 3명 이상의 보건요원을 두도록 하고 있다.
이들 보건관리자는 ▲건강에 이상이 있는 근로자의 발견 및 이에 대한 조치 ▲근로환경에 대한 조사 ▲보건상 유해한 근로조건 또는 시설 등의 개선 ▲보건교육 등 8가지 사항의 사업장 보건업무를 맡고 있다.
보건관리자들은 대개 의무실책임자를 겸하고 있으나 법이 정한 보건관리자의 업무는 다분히 산재예방에 주력한다는 측면이 강해서 의무실 운영과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국내 태반의 사업장은 인건비 등 경비의 지출을 줄이려고 법으로 정하고 있는 보건관리자를 두지 않고 있으며 법에 의무화돼 있지 않은 의무실 설치는 더욱 소홀한 실정이다.
이 교수는 질병의 예방뿐 아니라 치료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의무실설치와 산재피해자의 재활시절은 사원들의 후생복지를 위해 꼭 필요한 것임에도 이에 신경을 쓰는 사업주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의사회가 최근 서울시내 1백39개의 규모가 큰 사업장을 대상으로 보건관리자의 유무를 조사한 결과 37%(51개소)가 보건관리의사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세한 사업장은 보건관리의사의 고용율이 더욱 떨어질 것으로 추측된다.
큰 기업들을 보면 현대그룹은 종합병원 형태의 부설병원을 갖추고 있고 삼성그룹 산하의 공장들은 1∼2명 이상의 전임의사와 비교적 좋은 시설이 있는 의무실을 갖고 있다.
방림방적·경성방직·산업은행·해태·롯데제과 등도 전임의사와 수준급 의무실을 갖추고 있으며 나머지 금융기관은 대부분 시간제 의사를 고용, 의무실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그밖에는 의무실이라야 의사도 없이 간호원이 혈압을 재거나 적당히 약을 조제해 주는 곳이 더욱 일반적이다.
윤방부 박사(가정의학회 이사장)는 의무실 담당의사는 바쁜 종합병원 의사들과는 달리 시간적 여유를 갖고 사원들의 건강상담에 응할 수 있고 개인의 체질·질병력을 파악해 효율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적성에 맞지 않거나 과도한 업무 등에서 오는 질환을 예방·치료하기 위해 직장상사와 상의해 적절한 업무의 분담, 부서간 이동 등을 권고하는 등의 역할도 할 수 있다는 것.
이 교수는 의무실의 역할은 ▲위급한 증세에 대한 대처 ▲중대하지 않은 경미 질환의 치료 ▲물리치료 등이라고 정의하고 구미의 의무실도 이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경우 의학협회가 의무실의 크기, 구급용구 세트, 치료시설, 의료요원의 확보기준 등을 정하고 있다. 의료요원은 종업원2천5백∼3천명 당 의사1명, 종업원1천∼1천2백 명당 간호원 l명을 두도록 하고 있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경성방직 영등포공장(종업원 1천3백 명)부속의원 원세재 원장은 실력 있는 젊은 의사들이 의무실에서 근무하기를 꺼려 의료진 확보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원 원장은 의원급 시설을 갖추고 전임의사를 두고 있는 의무실은 전국적으로 80여 군데 정도일 것으로 추산하고 대부분은 개업의 또는 종합병원 의사와 계약, 파트타임 근무제를 채택하고 있다고 밝혔다.
63년에 개설된 이 의무실은 의사1명·간호원3명(하루3교대)·X-레이기사 1명에 X-레이시설·혈구계산기·소변 검사기 등 검사기구를 갖춘 비교적 시설이 좋은 곳이다.
산업은행부속의원의 경우는 일반환자진료실외에 치과 진료실을 갖추고 전액무료로 치료해 주고있다.
특히 간기능 검사·빈혈·신장검사 등을 30분에 할 수 있는 컴퓨터검사기를 보유하고 있고 연1회 치과에서 전 직원의 스켈링을 해준다.
하루 환자 수는 40명∼50명으로 주로 소화불량·감기·당뇨·고혈압환자가 많다.
회사 일이 바쁜 직장인들은 오랫동안 기다려야하는 종합병원에 가기가 어려워 몸의 이상을 느끼면서도 체크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따라서 이상을 느낀 단계에서는 간단한 치료로 고칠 수 있는데도 병을 키워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지경이 돼야 병원을 찾기 때문에 의료비·시간·인력(본인 및 의료인)의 수요가 커진다.
사업장안에 의무실을 갖추고 있으면 간단히 질병을 체크해 예방·치료할 수 있다는 데서 그 기능은 중요하다.
그러나 일부 사업주의 이해부족으로 의무실에 대한 투자를 꺼려 의무실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진료요원·시설 등이 부족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이 지적하는 문제점이다.<김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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