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The New York Times

아시아 불안하게 하는 미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테마가 있다. 미국의 힘·신뢰성·의지가 날로 줄어들어 결국 중국이 아시아를 지배할 거라는 우려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은 알맹이 없는 미사여구로 취급받고 있다. 목표가 아무리 그럴싸해도 확실한 후속 조치가 없다면 대통령의 무력함이 드러날 뿐이다.

 남중국해 등 이 지역에서 중국의 강력한 자기 주장이 감지된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직을 떠난 후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줄어든 듯하다. 적어도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곳 싱가포르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진정한 글로벌 도시 중 하나다. 싱가포르의 놀라운 경제적 성공이 유지되려면 역내 안정이 절대적이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며 균형을 잡아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과업이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싱가포르는 인도 신임 총리 나렌드라 모디를 흥미롭게 주시하고 있다. 근대성·효율성·자유무역을 중시하는 모디 총리가 ‘인도의 리콴유’가 될 가능성이 엿보이기 때문에 그렇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세력균형을 지지해왔다. 장기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아시아의 유일한 맞수는 인도이기 때문에 싱가포르는 더더욱 모디 총리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러나 ‘중국에 맞서는 인도’라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 자유를 제외한 모든 측면에서 인도는 중국에 크게 뒤지고 있다. 아시아가 모디 총리의 마법을 기다리는 동안 태평양 강대국인 미국의 중요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도는 국내문제 해결이 먼저다. 인도가 세계 무대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은 결코 인도 서민의 관심사가 아니다.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역할에서 미국이 한 걸음 물러났다고 느낀 아시아는, 자원과 통제력을 얻으려는 중국의 체계적인 대외 확장 정책에 더욱 불안하다.

 싱가포르는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었기에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는 지정학적 환경이 싱가포르에 적대적이지 않을 때에나 가능하다. 그동안 싱가포르의 번영은 안전이 보장된 자유 항해에 의존했다. 일본이 핵무장을 추구하지 않았던 것도 핵우산 제공을 약속한 미국의 방어조약 덕분이다. 미국이 안정을 제공한다는 이런 믿음이 동북아와 동남아에서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싱가포르국립대 공공정책대학원의 라진 샐리 초빙 교수는 올해 ‘싱가포르 스트레이트 타임스’에 기고문을 썼다. “글로벌 도시란 진정으로 글로벌한 서비스가 집결하는 곳이다. 금융·전문용역·운송·통신 등의 비즈니스가 다국적 언어와 통화로 다양한 시간대와 사법권에 걸쳐 이루어진다. 이런 글로벌 도시는 21세기 초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현재 전 세계에는 진정한 글로벌 도시가 5개밖에 없다. 런던과 뉴욕이 선두를 달리고, 아시아의 서비스 허브인 싱가포르와 홍콩이 뒤따른다. 중동의 허브 두바이는 글로벌 도시로서 역사가 가장 짧고 규모도 가장 작다. 상하이도 글로벌 도시로 성장하고픈 열망을 가졌지만 계획 경제의 잔재인 규제와 레닌주의적 정치 체제에 발목이 묶여 있다. 도쿄는 너무 일본 중심적이라 글로벌 도시와는 거리가 멀다.”

 그 어떤 글로벌 도시도 정치 안정이 불확실하고 자유가 위협받는 환경에서 번창할 수 없다. 중국이 부상하는 지금, 미국이 아시아에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 그렇게 하지 않는 미국은 불안을 낳는 원인이다.

 아시아는 왜 불안할까. 싱가포르와 베트남·일본 등을 포함한 포괄적 자유무역협정인 환태평양파트너십(TPP) 체결을 위한 오바마 행정부의 노력이 실망스럽기 때문만은 아니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의 주요 교역상대국 자리에서 미국이 큰 격차로 밀려났기 때문만도 아니다. 남중국해 해양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중국의 해상 공세가 저지되지 않기 때문도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매우 애매한 답을 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지난번 아시아 방문에서 오바마는 “미국이 일본령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보호할 것”이라 했지만 이 답변은 “또 다른 ‘레드 라인’을 그어야 할 위험을 내포하지 않느냐”는 또 다른 질문을 낳았다. 당시 오바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나라가 규범을 위반할 때마다 미국이 바로 전쟁이나 군사 개입에 나서지 않으면 우리가 규범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런 발언이 실질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나.

 앞서 언급한 이유들을 다 합친 데다 전반적으로 불편한 느낌이 추가되기 때문에 아시아는 불안하다. ‘아시아 회귀’는 시리아가 넘은 ‘레드 라인’이나 ‘아사드는 물러나야 한다’는 발언과 다를 바 없다. ‘실천 의지가 없는’ ‘이행 조치가 없는’ ‘계획이 없는’ 미국 대통령의 말은 말뿐이라는 것을 유럽에 이어 아시아도 눈치챘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치는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거리로 나온 홍콩의 용감한 민주화 시위대를 보라. 그러나 사상에는 실천이라는 뒷받침이 필요하다.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10월 16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