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4)제76화 아맥인맥(5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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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육탄 4용사>

<81년3월16일 양난>작전참모 조 소령과 함께 지프로 36연대를 방문했다. 우측에 계류를 끼고 약 8km의 진흙길을 달리는 동안 물레방아 돌아가는 산모퉁이를 돌아 논과 밭이 깔린 한 촌락을 지나면서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정경을 발견했다.
격전이 휩쓴 이 산촌부락에 어느새 피난민들이 되돌아 온 것인가…. 봄볕 따사로운 동네 앞 개천가 모래밭에 어린 두 소녀가 공기놀이를 하고 있고 겨우 남아있는 오막집 울타리에는 구겨진 태극기가 봄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그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 산가의 봄은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며 한없이 평화롭다. 아아, 몹쓸 놈의 오랑캐들! 이 땅의 이 순박한 백성들이 무슨 원죄가 있어 이러한 시련을 겪어야 하나? 아아 황폐한 조국산하, 불쌍한 동포 형제들 천우 있으시라.
36연대 수색대 책임 장교를 만나 전과를 상세히 듣고 밤에 3대 대장 이규승 소령을 만나 이번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자세한 경과를 듣는 한편 이 대대장의 배려로 사선을 넘어 직접 적의 참호에 수류탄 공격을 감행한 용감한 소대 병사 4명도 면접했다.
빈약한 장비로 육탄 돌격한 이 4 용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가슴이 뭉클하고 콧날이 시어지는 강한 충동을 받았다.
이 날밤 홍이섭 교수와 나는 이규승 대대장의 숙소인 민가의 온돌방에서 같이 잤다. 밤 깊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눈 이 대대장은 위엄과 사랑으로 부하를 다룰 줄 아는 군인이었다.

<19일 청>오늘의 암호 「코끼리-토끼」-. 천막 틈으로 달빛이 스며든다. 음력으로 2월 보름이 가까운 모양이다. 지금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귀심이 여의라-.

<20일 양>논공행상의 날이다. 미 10군단 사령관 「앨먼드」 중장은 오늘 은성·동성 훈장을 후대하고 한국군 5사단 본부에 온다.
사단에서는 아침부터 대청소를 실시하고 의장병 사열·군악대 정비·복장통일 등 부산하다.
전진을 털고 사단본부에 모여드는 병사들 중에는 수류탄을 손에 들고 적의 토치카에 뛰어들었던 4명의 용사도 끼어 있으리라.
정각 하오 2시-.「앨먼드」중장은 헬리콥터 편으로 사단본부 마당에 내렸다.
오늘의 시상은 한국군 5사단이 그 먼 저 미군이 패퇴한 전선을 떠맡아 난공불락의 요충을 쳐부수고 승기를 잡은 혁혁한 공로를 세워 당연한 포상을 받은 것이다.

<23일 난>점촌에 와서 일박, 쾌청에 따스한 날씨다. 마침 점촌 장날인 듯 전화 속에서도 장이 섰다. 사람들은 생계를 위하여 결사적인가 보다. 장터를 돌아보며 생기를 느끼고, 봄 씨앗과 더덕·씨 감자를 늘어놓은 노점 앞에서 나는 일말의 생의 환희 같은 걸 되찾았다.
나의 고향에도 봄은 왔으리라. 봄의 양광을 받은 흙은 수분을 머금고 생명의 씨앗을 기다리려니….
이 고장에는 그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화롭기만 하다. 문 앞에 기대선 한가한 아낙네, 뜨락에서 놀고있는 어린이들, 봄물이 넘쳐흐르는 논두렁에 소 몰고 지나가는 촌로, 이 모두가 평화로운 우리 농촌의 서정이 아니던가-. 아아, 평화가 그립다. 한없이 그립다.

<25일 우>뜻밖에 아내의 두 번째 편지를 받았다. 뛸 듯 반가 왔으나 가족의 곤경을 알고 천길 벼랑에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나의 가족은 내가 염려했던 그대로 불행 속을 헤매고 있다.
기아에 직면한 분산된 나의 가족· 친척들-. 그들은 이 무력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돌아가고 싶다.

<4윌1일 청후운>보고용 주봉일경을 추가로 그렸다. 그림이 될 리가 없다. 기계적으로 다루었을 뿐이다. 밤에 「쇼트」소령을 방문, 사의를 전했다. 「쇼트」소령은 재차 전선 행을 종용, 불안정한 기분이다. 장차 가족들의 생계를 생각할 때 그저 막연할 뿐이다.

<7일 청>쾌청한 날씨다. 그 동안 정들었던 G3를 뒤로하고 홍이섭 선생과 같이 트럭에 올랐다. 죽령을 넘어 풍기·영주를 거쳐 안동에 도착했다. 여기서 기차 편으로 우보에 와서 차중에서 밤을 세웠다.

<8일 양>봄의 양광이 눈부신 아침 다시 트럭 편으로 우보를 출발, 하오 5시30분 대구에서 내렸다. 홍이섭씨는 가족이 있는 부산으로, 민석홍씨는 서울로, 나는 가족이 기다리는 대전으로 각각 헤어졌다.
밤 0시30분 기차로 대전역에 내려 철도 경찰로부터 그날의 암호 「서울-수원」을 알아 가지고 대전시내 대사동 가족이 있는 곳으로 직행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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