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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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입시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치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스포츠머리 서너명이 노래를 부르며 지나간다. 아마 대학 입시에 낙방한 학생들이 틀림없는 모양이다. 유행가 노랫가락에 실어 세태를 꼬집는 젊은 익살이 착잡한 나에게 무심코 고소를 터뜨리게 한다.
날씨도 곤두박질, 입시도 곤두박질, 1월29일자 석간신문을 펴든 나는 숨이 멎을 것 같은 충격에 내 아이가 대학에 낙방한 아픔만큼이나 큰 아쉬움이 앞을 가로막았다.
장님 코끼리 더듬기로 여기저기 원서를 접수시켜놓고 한없이 초조한 몇 날 몇 밤을 지새운 끝에 썰렁한 교정 게시판에서 내 이름 석자를 끝내 찾지 못한 그 쓰라림은 잠시 제쳐놓기로 하자.
입시생에게 시달된 모든 주의사항을 곱다랗게 준수하고 마감시간을 지켜 원서를 접수시킨 우리네 보통학생들과 보통학부모들은 갑작스런 접수마감 연장이라는 엄청난 사실 앞에 발을 구르며 원통해 했지만 이미 기차는 떠난 뒤‥‥.
분수를 모르는, 배짱도 없고, 부모로서의 뒷받침도 부족했던 딸아이가 작년에도 낙방, 금년에도 낙방을 한 것이다.
자주 바뀌어온 입시제도중 처음으로 시도된 무시험 대입 첫해인 작년과는 달리 많은 미비점이 보완되었기를 믿고 안전권을 택해 원서를 넣은 결과인 것이다.
『정직하고 착실한 사람이 잘사는 사회가 되어야한다』고 강조한 메시지 앞에, 마음 같아선 목놓아 통곡이라도 하고 싶다.
직장의 위아래 동료나 친지의 위로인사 받기가 민망한 남편은 줄담배만 태우고, 누나의 낙방에 두 번이나 놀란 고1 아들아이는 방학인데도 도시락을 싸 가지고 도서관엘 나가고 있다.
어릴 적부터 버스나 기찻간에서 사탕껍질, 껌 껍질 하나 버리지 않던 남매다.
『나라 다 망치고 자기만 왕비가 되면 무얼해』하며 요물 장희빈을 맹렬히 비난하던 여섯 살적 아들아이가 나는 눈물겹도록 자랑스러웠고, 딸아이가 비록 눈치입시에 낙방은 했으되 창피스럽다고는 생각을 않는다. 비록 시간은 걸릴지라도 다시 한번 도전을 해보고 싶다.
만일 딸아이가 요행수로 대학엘 붙었다면 씁쓰레 쓴웃음을 나는 웃었을 것이다.
입시 당락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들 말한다. 실상 대학입학이란 개체의 가능성을 개발키 위한 하나의 절차일 뿐 인격형성의 종지부는 아닌 것이다. 참으로 평범한 표현이지만 칠전팔기란 어구를 지금처럼 절실하게 피부로 느껴보기도 처음이다. 월사금 따위로는 얻을 길 없는 쓰라린 시련을 두 번씩이나 겪은 딸아이의 내면세계에도 큰 성장이 있기를 간절히 빌고싶다.
자-딸아! 이제부터 우린 다시 시작을 하자! 우린 단거리선수가 되지 말고 긴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마라톤선수처럼 끝까지 열심히 달려가자.

<경기도 안양시 안양6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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