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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로 푸는 히트곡의 비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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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호 32면

저자: 임진모 출판사: 아트북스 가격: 1만5000원

수많은 유행가가 뜨고 지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위대한 히트곡은 흔치 않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세계인들에게 널리 애창되는 ‘오버 더 레인보우’를 보자. 1930년대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강아지에게 불러주던 이 동화적인 노래가 작곡가들 사이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로 꼽힐 정도로 숭배되는 이유는 뭘까. ‘우리가 감히 꾸었던 꿈들이 정말 이루어질’ 거라며 암울한 대공황 탈출이라는 희망의 빛줄기로 전국민에게 정서적 공감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중음악은 예술성과 시대성이 ‘합’을 이룰 때 위대함을 낳는 법이다.

『팝, 경제를 노래하다』

『팝, 경제를 노래하다』는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가 1930년대 대공황기부터 2000년대 세계금융위기까지 세계 경제사의 주요 변곡점을 풍미한 팝의 명곡들을 분석한 책이다. 뜻도 모르고 따라 불렀던 팝송들을 시대별 경제상황과 대중의 정서를 반영해 해부하니, 과연 모두가 사랑하는 ‘불후의 명곡’이 될 수밖에 없었던 저마다의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인기야말로 시대성과 절묘히 합을 이룬 케이스다. 대공황과 2차 대전을 거쳐 비로소 경제적 여유를 누린 50년대, 베이비부머들의 소비풍조와 전국적인 TV보급은 당시 유행하던 아이템 테디베어를 안고 나와 ‘그대의 테디 베어가 될게요’를 부르는 이 ‘비주얼가수’를 전설로 만들었다.

60년대 비치보이스의 ‘캘리포니아 걸스’와 70년대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는 경제상황에 따라 같은 소재가 대중음악에 어떻게 다르게 반영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아메리칸 드림=캘리포니아의 풍요’로 통했던 60년대 비치보이스는 경제성장을 대변하는 신종 산업으로 떠오른 캘리포니아 서핑붐을 노래하며 미국의 대표성을 획득했지만, 장기불황에 들어선 70년대 이글스는 캘리포니아가 상징하는 미국의 실상이 낭만적 환상과 동떨어져 있다며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뼈아프게 고백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는 “당신이 처지고 고통스러울 때…눈을 감고 나를 생각해요”라며 고통과 관련된 어휘를 노골적으로 사용해 황량한 70년대의 정서를 다독인 ‘힐링’ 테마송으로 길이 전해진다. 하지만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이후 뉴욕에만 1000곳 이상의 디스코텍이 개업했을 정도로 동시기 소비 향락의 극치인 디스코 댄스 음악이 미국 사회를 강타한 것을 보면, 경제불황에 대중이 원하는 것은 희망과 현실도피 양쪽 다인 모양이다.

2012년 전세계를 휩쓴 ‘강남스타일’ 열풍도 향락적이고 경박한 말춤으로 세계적 경제 한파의 체감온도를 누그러뜨렸다. 하지만 같은 해 리얼리즘의 아이콘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점령하라’ 시위에 발맞춰 월가의 탐욕스러움을 비판하며 민중에게 도전과 응원의 메시지를 직설한 ‘레킹 볼’ 앨범은 『롤링스톤』지가 선정한 그해 최우수앨범이 됐다. 싸이와 브루스 스프링스틴, 훗날 어떤 노래가 위대한 노래로 기억될지는 작금의 경제 흐름을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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