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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싸게 못 팔게 규제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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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호 07면

최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컨슈머워치의 ‘단통법 폐지를 위한 소비자 1만인 서명운동’ 부스에서 시민들이 서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일본 제1의 이동통신사인 NTT도코모는 지난 6월 새 정액요금제를 내놓았다. 우리 돈으로 한 달 2만~3만원만 내면 무제한 음성통화를 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박근혜 정부의 아이러니] 해외 이동통신 시장은

 일본 이동통신 시장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NTT도코모가 파격적인 요금제를 내놓은 배경에는 위기감이 있다. 경쟁이 불러온 위기감이다. 2008년 7월부터 3위인 소프트뱅크가 애플의 아이폰을 일본 시장에 가장 먼저 출시하고, 잇따라 저렴한 요금제를 내놓는 등 시장 경쟁을 주도해 왔다. 2000년 말 18%였던 소프트뱅크의 시장 점유율은 25.1%(지난해 8월 기준)로 높아졌다. 소프트뱅크는 2013회계연도에 전년 동기보다 41.5%나 늘어난 5270억 엔(약 5조272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NTT도코모의 순이익(4647억 엔)을 훨씬 웃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미국 이동통신 시장을 흔드는 건 3위 사업자인 스프린트다. 스프린트를 중심으로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 데이터 공유 요금제 같은 다양한 요금제가 출시됐다. 스프린트는 최근 월 6만원에 통화·문자·데이터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상품으로 가입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미국 통신시장 4위인 T모바일도 무제한 데이터 프로모션을 시작했다. 12위인 버라이즌 와이어리스와 AT&T 역시 요금인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와 달리 글로벌 이동통신 시장에선 탈(脫)규제 바람이 한창이다. 단말기 보조금, 즉 휴대전화 할인 자체를 법으로 규제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과거 핀란드에서 일시적으로 2G 기반 휴대전화에 대한 보조금을 금지한 적은 있지만, 3G폰이 등장한 이후부터는 이런 규제를 모두 풀었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일본은 1990년대 후반 통신요금 규제를 사후인가제로 전환한 뒤부터 경쟁이 활성화됐고, 덕분에 소비자 효용이 증가했다는 다수의 연구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탈규제로 시장에서 경쟁이 강화됐고, 이게 업체들의 서비스를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요금인가제와 단통법 같은 규제에 묶인 국내 이통 시장에선 그 같은 서비스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본다. 익명을 원한 이통사 관계자는 “멤버십 혜택을 비롯한 서비스를 개발하고는 있지만, 추가 가입자당 한계생산 비용이 0에 가까운 이통업체들이 소비자에게 할 수 있는 최상의 서비스는 요금 인하와 단말기 구입 지원”이라며 “현재로선 두 가지 모두 규제받고 있으니 피나는 경쟁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 요금인가제 폐지 놓고 갑론을박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였던 통신비 인하를 위해선 요금인가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91년 도입된 요금인가제는 통신시장의 지배적 사업자가 요금을 인상하거나 신규요금제를 출시할 경우 정부의 사전인가를 받도록 한 것이다. 당시엔 무차별적인 요금 인하로 선두 사업자가 후발 사업자를 공격하는 일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이미 규제가 도입된 지 20년이 넘어 현재의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따라서 차라리 이를 없애 경쟁을 활성화하는 게 낫다는 게 폐지론의 요지다. 또 이미 인가받은 약관에 포함된 서비스별 요금은 신고만으로 요금을 인하할 수 있어 굳이 인가제를 존속시킬 이유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문지현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통신요금 인가제가 폐지 내지 완화되면 다양한 이동통신 요금제가 활발하게 출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요금 인가제 폐지 움직임이 있다. 전병헌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8월 요금인가제 폐지 등을 포함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미래부는 다음달 중장기 통신정책과 요금 인가제 관련 정책을 발표한다.

 요금인가제를 유지하면서 단통법에 시장경쟁 요소를 가미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번호이동과 단순 기변 고객 간 보조금의 차이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LG유플러스를 비롯한 이동통신 후발 사업자들이 특히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편이다. 단통법 구조에선 소비자가 구태여 번호이동, 즉 이통사 교체를 할 욕구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번호이동을 하면 지금까지 받아온 각종 할인혜택을 포기해야 할 뿐 아니라 가입비와 USIM 구입비 등을 추가로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비용들에 대해 보조금의 형태로 어느 정도 보전을 해줘야 그나마 휴대전화 거래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프랑스의 브이그텔레콤(2년 최대 50유로)과 스페인의 오렌지(매월 1유로씩 24개월간), 일본 NTT도코모(최대 1만9248엔) 등은 번호이동 가입자에게 추가 할인 혜택을 준다.

국회입법조사처도 단통법에 부정적
인터넷에서는 단통법 폐지 서명운동까지 벌어진다. 소비자 단체인 컨슈머워치는 단통법을 폐지해 달라는 의견서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했다.

 규제 전문가들은 단통법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정부가 규제를 수단으로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을 꼽는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필연적으로 시장의 효용성을 저해하는 ‘정부 실패’를 부른다는 것이다. 그 같은 역풍에 밀려 방향이야 어찌됐던 현행 단통법이 원안대로 유지될 것이라 보는 이는 드물다. 최병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당장 물러서긴 어렵겠지만 조금씩이나마 시장 기능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규제들을 완화해 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일찍부터 이동전화 보조금 상한선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여 왔다. 입법조사처는 지난 8월 ‘2014 국정감사 정책자료’에서 “보조금 상한선은 보조금이 차별적으로 지급돼 일부 사용자가 피해를 입는 경우를 막는다는 목적과 관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입법조사처는 또 “6개월마다 보조금 상한선을 방송통신위원회가 정하는 것도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시장의 불확실성과 소비자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통사들은 단통법의 긍정적인 효과를 부각하려는 모습이다. 이통사들의 단체인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는 16일 “단통법 시행 이후 2주간 저가 요금제 가입자 비율은 48.2%로 증가했고 고가 요금제 가입자 비율은 9%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지난달 저가 요금제와 고가 요금제 가입비율은 각각 31%, 27.1%였다. 중고폰 가입자 수도 증가했다.

 이에 대해 통신 소비자 모임인 전국통신소비자협동조합은 “그만큼 국내 스마트폰 가격이 비싸졌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인데, 이를 두고 단통법 효과 운운하는 것은 소비자 우롱”이라고 비난했다. 조합 측은 또 “단통법이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 줄여놓아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절약하게 된 걸 두고 단통법 효과라고 한다면, 밥 굶겨놓고 다이어트 시켜줬다는 것과 같은 궤변”이라고 했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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