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공시제 주장은 국회 입법 실패 희생양 찾으려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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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통법 혼란이 계속되면서 ‘분리공시제’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분리공시제란 소비자에게 지급되는 휴대전화 보조금 가운데 제조사가 이통사에 주는 장려금과 이통사 지원금을 구분해 공시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출고가 100만원짜리 스마트폰에 보조금 30만원이 붙어 소비자의 실구매가격이 70만원이라고 하자. 분리공시제를 도입하면 보조금 30만원 가운데 이통사의 지원금은 얼마인지, 제조사 장려금은 얼마인지 구분해서 소비자에게 알려줄 수 있다.

분리공시제는 단통법 논의 과정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분리공시제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선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할 뿐 아니라, 거품 낀 휴대전화 출고가격 논란을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국내 최대 단말기 제조사인 삼성전자는 “해외시장보다 높은 수준인 국내 장려금이 공개될 경우, 전체 시장의 97%에 달하는 해외 이통사들이 같은 수준의 장려금을 요구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반대했다.

당초 단통법 시행령에 포함돼 있던 분리공시제는 지난 9월 규제개혁위원회가 제외키로 결정하면서 무산됐다. ‘모법(母法)에서 금지한 분리공시제를 하위법인 시행령에 둬선 안 된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단통법 12조 1항은 ‘이통사가 제출하는 자료는 제조사가 지급한 장려금 규모를 알 수 있게 작성돼선 안 된다’고 규정했다.

단통법에 대한 비난여론이 높아지자 국회는 앞다퉈 분리공시 재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최민희 의원과 새누리당 배광덕 의원이 제출한 단통법 개정안에는 모두 분리공시제 재도입 내용이 포함됐다. 이를 두고 “졸속입법의 주역이었던 국회가 분리공시제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분리공시제는 단통법 부실의 본질이 아닌데 정치권이 이를 희생양으로 삼아 졸속입법을 합리화하려 한다”며 “세일 상품을 구매할 때 소비자는 얼마나 싸게 사느냐가 핵심이지, 할인금액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가격경쟁을 통해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면 해결될 문제”라는 것이 조 교수의 설명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제학부 교수도 “분리공시제로 보조금 규모를 공개하는 것은 결국 이통사와 제조사 모두 가격을 깎아주지 않을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시장에 비해 휴대전화 구입가격이 비싸다는 점에서 여전히 분리공시제가 유효하다는 주장도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제조사 장려금과 통신사 지원금이 투명하게 드러나면 소비자 입장에선 ‘처음부터 싸게 팔면 되지, 왜 비싸게 가격을 책정한 다음 장려금을 붙이는 것이냐’고 되물을 수 있다. 가격거품 논란을 잠재울 수 있고, 장려금을 많이 주는 업체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리공시제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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