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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타나모 포로학대 폭로 잇따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미국이 쿠바의 관타나모에 설치한 포로수용소에서 인권을 유린하고, 이슬람 종교를 모독하는 포로 학대 행위가 광범위하게 자행됐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가 관타나모 수용소를 '굴락'(gulag-소련의 강제 수용소)이라고 부르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 공개 반박했지만 상황은 갈수록 미국 쪽에 불리해지고 있다. 민주당이 관타나모 수용소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공화당 의원 일부도 이에 동조하는 등 정치적 파장이 확대되고 있다.

◆ 이어지는 폭로=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신호(20일자)에서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포로들을 안 재우고, 나체로 조사하는가 하면 개처럼 짖도록 하는 등 가혹행위가 자행됐음을 입증하는 문서를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타임이 입수한 84쪽의 기록에는 알카에다 조직원으로 분류된 모하메드 알카흐타니 등 두 명의 포로에 대한 신문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다. 기록에 따르면 미 정보요원들은 알카흐타니의 머리에 물을 붓고 옷을 벗긴 채 조사하거나 서있게 했다. 또 30일간 독방에 가두기, 잠 안 재우기, 외설적인 사진 목에 걸기 등 갖가지 가혹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화장실을 가지 못하게 하면서 소변을 바지에 보도록 했고 여성 요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개처럼 엎드려 울부짖도록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알카흐타니에 대한 미군의 가혹행위는 특히 이슬람 신도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모욕적인 것이다. 이슬람 세계에서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의 가혹행위 못지않은 커다란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앞서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미군 병사들이 코란을 화장실 변기에 버렸다고 보도, 중동 국가에서 대대적인 반미 유혈시위가 벌어진 바 있다. 미군의 자체 조사 결과 코란을 발로 짓밟는 등 일부 경전 모독행위는 사실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현재 540여 명의 수감자가 있다. 이들은 대부분 2001~2002년 아프가니스탄의 전장에서 체포된 뒤 재판도 받지 않고 외부와의 접촉이 일절 차단된 채 수감돼 있다.

◆ 거세지는 폐쇄 요구=상원 법사위원회는 15일 관타나모 수용소의 포로 학대 논란과 관련한 청문회를 개최키로 하는 등 정치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 출신인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조셉 바이든 상원의원 등은 이미 공개적으로 기지 폐쇄를 요구했다. 공화당 중진인 척 헤이글 상원의원도 "전 세계에서 미국의 이미지가 나빠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관타나모 수용소 때문"이라면서 국방부의 수용소 운용 실패를 비판했다.

하원 군사위원장인 공화당 덩컨 헌터 의원도 12일 부시 행정부의 일부 관리가 관타나모 수용소의 폐쇄를 원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앰네스티를 비난하면서 "미국은 전 세계의 자유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딕 체니 부통령도 13일 폭스 TV에 방영될 인터뷰에서 "관타나모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 테러범들이고, 나쁜 사람들"이라며 폐쇄 요구를 일축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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