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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독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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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유엔에서 중국이 일본을 코너로 몰고 있다. 종목은 '안보리 상임 이사국 진출'. 지난 4월만 해도 G4(일본.독일.브라질.인도)의 상임 이사국 진출 길을 여는 결의안은 회원국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쉽게 얻을 것 같았다.

그러나 5월 16일 막상 결의안 초안이 제출되며 뚜껑이 열리자 의외의 상황이 전개됐다. G4 지지 그룹이 흔들리며 결의안 표결 시기가 계속 밀리고 있다. 6월 중에서 6월 20일로 갔다가 6월 말 설이 나오더니 이젠 일본 쪽에서 7월 설을 흘린다.

우선 옛 커피클럽을 중심으로 한 반대가 거셌다. 커피클럽은 사교클럽 같은 이름을 버리고 'Like-Minded Group'으로 갔다가 'Uniting For Consensus', 즉 '합의를 위한 단결'로 확정해 결의를 다졌다. 회원이 최대 50개국인 UFC는 '합의 없는 표결은 대립과 분열만 심화시킨다'는 구호를 내건다. UFC는 유엔에서 전체 모임도 하고, UFC 소속 대사끼리 집단적으로 주재국에 입장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국이 결정타를 날렸다. 중국은 당초 '반대표 하나'로만 여겨졌다. 그건 잘못 본 것이었다. 게임이 시작되자 중국은 한국에 연대를 제안했다. 그리고 가장 활발하게 반대 특사를 보냈다. 겉으론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지만 실제론 '일본 반대'가 핵심이다.

UFC의 핵심인 한국.이탈리아가 20~30개국에 특사를 보냈지만 중국은 70여 국에 무더기로 특사를 보냈다. 일본의 원조에 취한 가난한 나라들에 중국 특사는 '돈이 다가 아니다. 멀리 보라. 중국을 무시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잔뜩 풍겼다. 영향을 주고 받으며 중국과 UFC의 합동 플레이가 거칠어지자 일본을 지지했던 미국도 "9월 이후로 논의를 미루자"고 나왔다. 일본의 예봉은 꺾였다.

중국의 '반일 독기(毒氣)'의 이유는 분명하다. 우선 비토권 행사까지 가지 않고 미리 싹을 자른다는 전략적 고려다. 그러나 바닥엔 과거사의 앙금이 깔려 있다. '제국주의 반성 없는 일본이 왜 아시아 대표로 나서냐'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저분한 과거는 개인, 국가 할 것 없이 장애물이다. 그런데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집착하고, 문부상은 오늘도 망언을 늘어놓는다. 머리에 무슨 계산이 들어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안성규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