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 넘어도 안착 아직 힘겨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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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방향은 맞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다."(대신증권) "연속 상승에 따른 피로 해소가 필요하다."(대투증권) "무리한 매수보다는 한 박자 쉬어가라."(대우증권)

3개월 만에 종합주가지수 1000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지만 증권사들은 오히려 차분한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연초 급등기에 기대감을 부추겼던 때와는 대조적이다.

미국 증시 등 대외 여건이 여전히 불확실한데다 내수 회복도 더디기 때문이다. 양경식 대신증권 연구원은 "수급 여건이 양호해 종합주가지수가 1000을 넘을 수는 있겠지만 안착은 어렵다"고 분석했다.

?단기 조정은 불가피=미국 금리 인상으로 세계 증시가 위축되면서 연초 상승세가 한순간에 꺾이는 경험을 한 뒤 국내 증시는 미 증시 움직임을 그대로 좇아가고 있다. 증시가 최근 4주간 급등한 것도 '유가 안정→미 금리 인상 일단락→미 증시 상승' 시나리오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9일 "미 경제가 견실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며 지속적인 금리 인상을 재확인했다. 그린스펀 의장은 미국의 주택경기의 과열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국제 원유 시장에서 투기 수요가 다시 꿈틀대고 있고, 인텔을 비롯한 미국 기술주의 2분기 실적도 애초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국내 사정도 주가를 밀어올릴 정도로 좋지는 않다. 기업과 가계의 투자.소비 심리를 나타내는 지표들이 다시 하락하고 있고, 2분기에도 기업 실적은 여전히 부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성주 대우증권 연구원은 "경기 회복의 기대가 실제 지표를 너무 앞서 나간데 따른 부담이 아직도 남아있다"며 "외국인 투자자도 아직은 적극적으로 주식을 사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상승 흐름은 유지=신중론이 많지만 큰 흐름으로 볼 때 증시가 분명 상승 기조 속에 있다는 데는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한다. 지수가 연중 고점(3월 11일)이후 석달 가까이 900대를 유지할 정도로 버티는 힘도 세졌다.

이 때문에 '지수 900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지수가 1000을 향해 나아갔던 1994년 9월과 99년 12월 기관투자자들은 주가 하락에 대비해 주식을 팔아치웠지만, 최근 한 달간은 1조6000억원어치 가량을 순매수했다. 특히 펀드로 돈이 몰리면서 투신권이 6000억원 이상을 순매수했다. 김세중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에는 지수가 900을 넘으면 내리막을 준비했지만 최근에는 900선을 장기 상승의 도약대로 여기고 매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900선에서 자사주 매입이 빈번한 것도 이런 인식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2000년 이후 삼성전자는 8번 자사주 매입에 나섰지만 지수 900선 후반에서 매입 결정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포스코와 현대차도 지수가 970을 웃돌던 2월 중순 자사주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김무경 대투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주가가 조정을 받을 때를 기다렸다가 매수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신증권은 "당분간 지수 900~1000포인트를 염두에 둔 박스권 매매가 바람직해 보인다"고 밝혔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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