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 영역싸움 … 은행은 괴로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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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은행.증권.보험사가 서로 고유 영역을 지키거나 빼앗으려는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은행과 증권사들은 올 들어 증권사에 신탁업을 허용하는 신탁업법 개정을 둘러싸고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은행과 보험사 사이에는 보험사의 제한적인 은행업 진출을 허용하는 어슈어 뱅킹과 앞으로 10년간 200조원에 가까운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되는 퇴직연금이 논쟁의 대상이다.

힘겨루기의 양상도 바뀌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권 간 칸막이가 허물어지는 과정에서 은행권은 방카슈랑스와 펀드 판매 허용 등에 힘입어 증권.보험사를 압박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은행업과 신탁업을 넘보는 보험사와 증권사의 공세를 막아내느라 은행권이 바쁜 모습이다.

◆ 증권사 신탁업 허용=정부는 지난 4월 의원입법 형태로 은행의 고유 영역인 신탁업을 증권사에도 허용하는 내용의 신탁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증권사도 은행처럼 고객으로부터 재산관리를 위임받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게 된다.

신탁업이란 텃밭을 내줄 위기에 처한 은행권은 재경위 등 관련 상임위 의원들을 접촉해 은행연합회가 작성한 반대 보고서를 전달하는 등 법안 통과 저지에 나서고 있다.

은행권은 공신력이 부족한 증권사가 신탁업을 하게 되면 금융산업과 증권산업 발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양한 자산 운용 경험과 노하우를 갖추지 못한 증권사들이 앞다퉈 시장에 뛰어들어 과열경쟁을 벌일 경우 신탁재산의 부실화를 불러와 고객과 증권사 모두에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증권사들은 '남 걱정하지 말라'는 입장이다. 증권업협회 관계자는 "주식.채권.실물펀드 등 다양한 투자수단을 개발해 온 경험이 있는 증권사들의 참여로 신탁시장이 확대될 것"이라며 "증권사들이 기업공개 업무를 수행해 오며 기업분석 능력을 쌓아 왔기 때문에 인력과 시스템을 갖추면 대출도 문제없다"고 반박했다.

◆ 어슈어 뱅킹과 퇴직연금=금감원이 마련 중인 보험산업 발전방안에 보험사가 제한적인 여.수신 업무를 하거나 은행 자회사를 두는 방식으로 은행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어슈어 뱅킹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자 은행권이 펄쩍 뛰고 있다.

대기업 계열사가 보험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 업무를 허용하면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막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보험업계는 자산 규모가 커지면서 채권투자와 대출 등 기존의 자산운용 방식으로는 효율성이 떨어져 은행업 진출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금감원은 어슈어 뱅킹의 경우 재정경제부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한발 물러선 상태다.

올 연말에 허용되는 퇴직연금도 공방전의 대상이다. 은행들은 보험사의 퇴직연금보험이 원리금을 보장할 수 있게 한 데 비해 은행 상품은 원금 보장도 안 되는 특정신탁으로만 팔게 돼 있어 불공평하다는 입장이다. 보험사들은 은행들이 신탁과 보험의 차이를 무시한 일방적 주장이라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나현철.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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