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이상길이 사는 살림집, 한옥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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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집, 한옥예록건축사무소의 이상길 소장은 현대 건축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옥에 아파트의 장점을 두루 접목해온 건축가다. 그가 현대식으로 변모한 한옥에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래되어 더 좋은 곳

이상길 소장은 원래 현대 건축을 하던 사람이다. 늘 비슷한 소재, 비슷한 형태로 건축하는 것에 식상함을 느낄 때 즈음, 그의 눈에 한옥이 들어왔다. “우연히 시골에 남겨진 빈 한옥 몇 채를 리모델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1950년대쯤 지어진 것들이었어요. 꽤 오래됐는데도 내부가 좀 낡은 것을 빼고 뼈대 자체는 따로 손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튼튼하더라고요. 한옥의 힘을 느꼈다고 할까요. 그때부터 이렇게 멋진 한옥을 살릴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상길 소장이 아내와 함께 사는 집은 한옥이다. 10년 전 사무실 겸 모델하우스로 사용하기 위해 개조한 곳으로 지난달부터는 이곳을 집으로 꾸며 살고 있다. 이 한옥이 처음 세워진 게 1950년대라고 하니, 햇수로 꼬박 60년을 넘긴 건물이다. 오랜 시간 숨결이 묻은 곳이지만 단 한 번도 불편함을 주지 않았고, 지루할 틈도 없었기에 충분히 집이라는 공간으로 삼을 만했다. 그 사이 몇 번의 공사를 거쳐 조금씩 변모하기는 했지만 골조는 바꾸지 않았다. 몇 해 전 ㄱ자 모양이던 집을 ㄷ자 형태로 증축할 때에도 기존에 있던 나무와 어우러지도록 소재를 고르고 또 골랐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현재의 집에 어울리는 고재를 구해 공사를 했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참 신기했어요. 아파트에 살 때엔 이사를 다녀도 특징 없이 네모난 공간이 늘 그 집이 그 집이라는 느낌이었는데, 한옥은 매일 왔다가 오늘 올 때 또 느낌이 달라요. 공간마다 크기와 모양도 다르고, 넓은 마당까지 있으니 올 때마다 가슴 설레는 게 마치 신혼집에 돌아오는 기분입니다.”21 선이 수려한 기와, 흙벽 아래에 기와를 잘라 붙인 장식들, 옹이 느낌까지 살아 있는 대들보와 서까래…. 한옥의 진정한 멋은 건축물과 자연이 하나가 되듯 어우러진다는 데 있다.

나지막한 산 아래에 있어서인지 더욱이나 아담한 느낌이 드는 이상길 소장의 집. 2 한옥의 자연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나무 대문이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키 낮은 나무 대문을 하나 더 달았다. 대문에 달려 있는 낡은 자물쇠, 무성하게 자라나는 아이비 덕분에 이 집이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1 마당과 통하는 거실 문은 단열 효과는 물론 디자인 요소도 멋진 접이식 문으로 바꾸었다. 시스템 창호이기 때문에 겨울에는 찬 바람을 차단해주는 역할도 톡톡히 한다. 2 한옥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경사진 기와지붕이 아닐까. 고즈넉한 멋을 자아내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3 한옥에는 삐걱거리는 나무 문만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과감히 깨주는 현대식 철문. 아파트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이 인터폰도 달았다.

자연을 닮은 뼈대 있는 건축

그가 오랜 시간 건축의 테마로 삼고 있는 한옥은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낯선 건축물이다. 특유의 예스러움이 매력적이어서 많은 이들이 로망을 가지고는 있지만, 막상 한옥에서 살 것을 생각하면 대부분 불편함부터 떠올린다. 유난히 좁은 방, 바람만 불어도 삐걱대는 나무 문,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구조 탓에 마당을 통해서만 이동할 수밖에 없는 부실들, 게다가 취약한 냉난방까지. 대부분의 사람은 기존에 있던 낡은 한옥을 부수고 현대식 새 집을 짓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여긴다. 한옥이 거주지로는 큰 장점은 무엇일까. “한옥을 알고 싶다면 시멘트로 찍어내듯 만드는 아파트와 비교해보세요. 한옥을 이루는 소재는 돌이나 나무, 흙, 종이 등 자연적인 것입니다. 쉽게 말해 친환경 요소가 가득한 건축물이라는 이야기지요. 우리의 전통을 지켜간다는 의미를 떠나서, 한옥이라는 건축물은 요즘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친환경적인 삶에 가까운 터전입니다.”

한옥은 자연 소재를 활용하는 것은 물론, 인공적인 가공 과정을 거치는 다른 건축과 달리 최대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리는 것이 큰 특징이다. 대들보나 서까래로 사용하는 나무는 집의 전체 틀에 맞게 모양을 변형시키지 않고 휘어지면 휘어지는 대로, 옹이가 있으면 그 옹이마저 살려서 짓는다. 게다가 대부분 ㄱ자 또는 ㄷ자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속에서 공간을 나누다 보니 다른 어떤 집보다 재치 있는 공간 배치가 가능하다는 점도 재미있다. 이상길 소장은 자신의 공간에 한옥이 가진 이런 장점은 그대로 살린 채 현대인의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몇 가지 요소를 더했다. 난방이나 보안에 취약했던 나무 문을 없애고 그 자리에 원목 몰딩 시스템 창호를 설치했다. 마당에 있던 화장실도 집 안으로 들이고 샤워 부스도 만들었다. 흙으로 만든 벽 사이에 단열재를 넣어서 추위도 완벽히 극복할 수 있게 했으며, 거실과 이어지는 공간에는 입식 부엌을 설치해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사람이 어려움 없이 집안일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편리함이 중요한 21세기 사람들에게 전통을 위해 무조건 과거로 회귀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겠죠. 한옥에 살면서도 현대인의 삶에 맞춘 편리함을 갖추고,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영역은 보존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지요.”12 OCTOBER 2014날씨가 좋은 날은 접이식 문을 활짝 열어둔다. 이상길 소장은 집 내부와 마당과의 구분이 없을 만큼 개방감을 살렸다. 다이닝 룸은 의외로 현대적인 감각이 가득하다. 특히 벽면에 걸어둔 컬러가 강한 그림 하나가 이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한옥에 살면서도 현대인의 삶에 맞춘 편리함을 갖추고, 지켜가고 싶은 전통적인 영역은 그대로 보존해야죠11231 한국적 정서가 느껴지는 수납장 위에 가족사진을 올려뒀다. 곳곳에 볼거리를 만들어놓은 이상길 소장의 감각이 느껴진다. 2 한옥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절절 끓는 뜨거운 아랫목이 아닐까. 전통의 맛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이상길 소장이 설계한 아궁이. 3 나무와 기와 등을 소재로 꾸민 내부에는 현대적인 가구와 조명을 설치해 믹스 매치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지금이 행복한 한옥 살이

겉모습은 완벽한 한옥인 이곳은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실과 다이닝 공간이 이어지는 현대식 구조의 반전 공간이 펼쳐진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이 한옥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현관문을 열면 거실이 있고 그 옆으로 식탁을 놓아 주방까지 이어지는 구조로 만들었다. 그리고 따로 벽을 세우지 않아 전체 공간은 탁 트인 소통의 장소가 되었다. 또 소소한 데커레이션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 덕에 그의 한옥은 어디 한 곳,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곳이 없다. 빛을 최대한 집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곳곳에 설치한 천창, 컬러풀한 페인트를 칠한 벽 앞에 놓은 카르텔 가구, 집의 외벽은 물론 내부 벽에 기와를 넣어 만든 무늬 등 공간마다 그의 세심한 정성이 느껴진다. 한옥이라는 장소는 이처럼 전통 소재만 어울릴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면 꽤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

이상길 소장이 단순히 편리한 것만 추구했다면 한옥을 재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삶의 안식처이자 가족의 행복이 자라는 공간이라는 집의 의미를 떠올리며, 자신이 꿈꾸는 공간을 탄생시킨 셈이다. 어쩌면 우리는 집을 가지는 것에만 연연했지, 정작 중요한 의미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이상길 소장은 집이 주는 행복을 느끼라고 말한다. “집은 단순히 재산을 불리는 수단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공간입니다. 저마다의 가치대로 집을 꾸민다면 우리 주거 문화는 한층 다양해질 수 있겠죠.” 한옥 살이의 진정한 즐거움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 그것이야말로 이상길 소장이 꿈꾸는 건축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다. 1 한옥은 전통 소재만 어울릴 것이라는 고정 관념을 버리면 꽤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 흙이나 나무로만 마감할 것 같은 내부를 서양식으로 컬러풀하게 페인팅했다. 카르텔 가구까지 매치하니 더욱 패셔너블해 보인다. 2 서재는 그에게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벽은 흙벽, 천장은 서까래로 되어 있지만 다른 한쪽에는 소파와 함께 카르텔의 투명 아크릴 스툴이 놓여 있다. 이렇듯 서로 다른 감각을 지닌 아이템을 믹스 매치한 덕분에 공간이 한층 세련되게 느껴진다.

사진설명

1 선이 수려한 기와, 흙벽 아래에 기와를 잘라 붙인 장식들, 옹이 느낌까지 살아 있는 대들보와 서까래…. 한옥의 진정한 멋은 건축물과 자연이 하나가 되듯 어우러진다는 데 있다. 나지막한 산 아래에 있어서인지 더욱이나 아담한 느낌이 드는 이상길 소장의 집.

2 한옥의 자연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나무 대문이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키 낮은 나무 대문을 하나 더 달았다. 대문에 달려 있는 낡은 자물쇠, 무성하게 자라나는 아이비 덕분에 이 집이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3 마당과 통하는 거실 문은 단열 효과는 물론 디자인 요소도 멋진 접이식 문으로 바꾸었다. 시스템 창호이기 때문에 겨울에는 찬 바람을 차단해주는 역할도 톡톡히 한다.

4 한옥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경사진 기와지붕이 아닐까. 고즈넉한 멋을 자아내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5 한옥에는 삐걱거리는 나무 문만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과감히 깨주는 현대식 철문. 아파트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이 인터폰도 달았다.

6 날씨가 좋은 날은 접이식 문을 활짝 열어둔다. 이상길 소장은 집 내부와 마당과의 구분이 없을 만큼 개방감을 살렸다.

7 다이닝 룸은 의외로 현대적인 감각이 가득하다. 특히 벽면에 걸어둔 컬러가 강한 그림 하나가 이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8 한국적 정서가 느껴지는 수납장 위에 가족사진을 올려뒀다. 곳곳에 볼거리를 만들어놓은 이상길 소장의 감각이 느껴진다.

9 한옥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절절 끓는 뜨거운 아랫목이 아닐까. 전통의 맛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이상길 소장이 설계한 아궁이.

10 나무와 기와 등을 소재로 꾸민 내부에는 현대적인 가구와 조명을 설치해 믹스 매치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11 한옥은 전통 소재만 어울릴 것이라는 고정 관념을 버리면 꽤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 흙이나 나무로만 마감할 것 같은 내부를 서양식으로 컬러풀하게 페인팅했다. 카르텔 가구까지 매치하니 더욱 패셔너블해 보인다.

12 서재는 그에게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벽은 흙벽, 천장은 서까래로 되어 있지만 다른 한쪽에는 소파와 함께 카르텔의 투명 아크릴 스툴이 놓여 있다. 이렇듯 서로 다른 감각을 지닌 아이템을 믹스 매치한 덕분에 공간이 한층 세련되게 느껴진다.

기획=박주선 여성중앙 기자, 진행=배수은(프리랜서), 사진=이과용(brick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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