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과 주말을] '권력 유전자'가 따로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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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정치인을 위한 변명
헤르만 셰어 지음, 윤진희 옮김
개마고원, 340쪽, 1만2000원

'변명'에는 이미 '오명'이나 '악명'이 전제돼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친일파를 위한 변명' 같은 것이겠다. 이 도발적인 제목의 책 또한 정치인에 대한 악평을 전제로 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도는 늘 최하위를 차지한다. 그들에 대한 경멸과 야유는 성인 유권자는 물론이고 중고생들에까지 뿌리깊다. 경제.사회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1980년부터 줄곧 독일연방의회의 하원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이미 세계적이고, 역사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를 근거로 정치인의 추락은 '권력 유전자'를 가진 별난 종족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인을 둘러싸고 있는 정치 시스템의 문제라 주장한다.

몇 가지만 들어보자. 한 기업의 CEO자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경쟁은 잘 드러나지 않는 반면 정치인들의 '권력투쟁'은 보기 흉하게 여겨진다. 선정적 언론 보도가 그 한 원인이다. 또 정당 소속원으로서 '당론'에 대한 강박관념은 정치인 개개인의 의사를 억압한다. 당론에 끌려다니는 소신없는 정치가를 비난하면서, 막상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뽑아주지 않고 당을 바꾸면 '철새'가 된다. 유권자들은 엘리트보다는 서민의 대변자를 원하면서 또 그들의 '무식'을 탓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구 민주주의의 전통적 국가들조차 '탈 민주화'의 역사적 위협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사회구성원들이 정치인에 대해 무심해지면 무심해질수록 사회의 운명에 무심해지는 정치인이 더욱 많아질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인다. 책의 원제는 담담하게 '정치인(Die Politiker)'인데 번역을 하면서 대담하게 '정치인을 위한 변명'이 됐다. 부제는 '정치는 어떻게 정치인을 망가뜨리는가'라고 달았으나, 한편으론 '정치인은 어떻게 정치를 망가뜨렸는가'가 더 궁금한 것이 한국이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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