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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와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배우는 미국

중앙일보

입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민주당 선거지원 유세를 전격 취소한 뒤 에볼라 대책 회의를 소집했다. TV로 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선 “미국 본토에서 에볼라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에볼라 공포는 이미 미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현지 언론엔 에볼라(ebola)와 사회적 공포감(fear)을 조합한 ‘피어볼라(fearbola)’가 등장했다. CNN은 “피어볼라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에볼라 사망자가 발생한 텍사스주 댈러스에선 사재기 때문에 살균제가 동이 났다. 뉴욕 JFK국제공항엔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해 바지와 셔츠 소매를 테이프로 붙이고 일하는 공항 청소원이 등장했다. 지금 미국인 10명 중 4명(43%)은 자신이나 가족이 에볼라에 걸릴까 걱정하고 있다(WP와 ABC방송 조사). 피어볼라의 핵심은 미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다. 대통령까지 나섰지만, 자고나면 정부 얘기와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당국이 밝히는 에볼라 감염자 접촉 인원은 늘어만 간다. 현장에선 에볼라 대응 지침이 작동하지 않는다. 에볼라 요주의 대상인 간호사가 당국의 허락을 받고 비행기 여행을 다녀온 것이 단적인 사례다. 이 간호사와 같은 비행기에 탄 132명은 에볼라 공포에 떨고 있다. 특히 의료진 감염은 충격이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해온 미국 공중보건 시스템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미국은 이제 두 곳에서 ‘특별 학습’을 받고 있다.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와 민간 의료구호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MSF)다. 미국 에볼라 컨트롤타워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최근 나이지리아의 에볼라 퇴치 성공 비결을 배우기 위해 연구인력을 급파했다. 지난 7월말 첫 에볼라 환자가 발생했던 나이지리아는 8월말 이후 신규감염자가 나오지 않으면서 에볼라 통제 국가로 복귀했다. 비결은 신속한 총력 대응이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첫 환자가 발생하자 즉각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1·2차 접촉자 894명에 대한 중점감시가 시작됐다. 이들의 증상 체크를 위해 전문인력이 방문한 횟수만 무려 1만8500회였다. 지역 공무원들의 모니터링 대상은 접촉자 주변의 2만6000여 가구에 달할 정도로 광범위했다. MSF에선 의료진 가이드라인을 배워왔다. 이 가이드라인엔 MSF가 수십년동안 에볼라와의 전쟁 최전선에서 활동하며 축적한 노하우가 담겨있다. 온 몸을 빈틈없이 감싸는 것은 기본이고, 방역복을 입고 벗을 때는 바이러스 노출을 피하기 위한 절차를 지키는지를 반드시 다른 의료진이 입회해서 감독하게 돼있다.

그러나 미국이 정작 배워야 할 것은 신종 질병 퇴치에 있어 자만과 방심이 금물이라는 사실일지 모른다. 지난 8월 라이베리아에서 에볼라에 걸린 켄트 브랜틀리 박사 등 2명을 데려와 완치시킨 후 미국 보건당국엔 자신감이 과잉충전됐다. 이는 에볼라 대응 인프라 실태에 대한 간과로 이어졌다. 미국에서 생화학적 봉쇄시설을 갖춘 ‘수퍼 병원’은 애틀랜타 에모리 대학병원 등 4곳 뿐이고, 최대 수용 인원은 13명에 불과하다. 에볼라 의심환자가 속출하면 지역 의료시스템이 대응할수 밖에 없다. 그러나 CDC는 일선 병원들을 위한 에볼라 대처 매뉴얼을 만들고 전파하는데 실패했다. 심지어 라이베리아에서 활동중인 MSF 소속 의사가 가이드라인이 너무 느슨하다고 직접 경고까지 했지만 CDC는 무시했다.

미국 정부는 이제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 뿐 아니라 에볼라 격퇴를 위해서도 우방국에 손을 벌리는 상황이 됐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지난 13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에볼라 문제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정부는 의료진 파견 등을 포함해 신중 검토중이다. 이제 한국도 에볼라와 무관치 않은 상황으로 접어들게 됐다. 의료진 파견은 공중보건 차원에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한국 사회는 에볼라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돼있는가.

이상렬·채병건 특파원, 정원엽 기자 isang@joongang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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