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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지로 뽑힌 동 대표 … 주민 무관심이 비리 키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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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3일 서울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 단지 내에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민들은 “서울시 실태 조사에서 부실 관리가 확인됐다”며 지난 6월 투표를 통해 회장을 해임했다. 하지만 회장이 “투표 절차가 잘못됐다”며 투표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 주민 제공]

“겨우 5%가 넘는 지지를 얻어 당선된 회장이 무슨 대표성이 있겠어요?”

 지난 13일 서울의 A아파트 단지 앞에서 만난 한 주민이 불만을 토로했다. 이 주민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주민들 의견을 무시하고 너무 독단적으로 일 처리를 한다”며 “회장 선거를 다시 하자고 요구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또 다른 주민은 “공정한 선거를 통해 당선된 회장을 두고 사사건건 트집 잡고 방해하는 이들이 있다”며 “회장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승복하고 협조해야지 이제 와서 대표성 운운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한 동 대표는 “극히 소수의 주민만 양쪽으로 나뉘어 싸울 뿐 대다수 주민들은 아파트 일에 관심 자체가 없다”며 “이런 무관심이 결국 아파트 관리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5600여 가구가 사는 이 아파트는 지난해 4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선거를 치렀다. 가구당 한 표가 행사되지만 당시 투표에 참여한 가구는 870여 가구에 불과했다. 투표율은 15%에 머물렀다. 후보 다섯 명 중 가장 많은 득표를 한 B씨가 292표로 회장에 당선됐다. B씨의 득표율은 33%. 전체 가구수로 따지면 5%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지지를 얻은 것이다. 더구나 2위와는 한 표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결국 B씨가 회장 자리에 앉기까지 수개월간 투표함 보전 신청과 소송 등 지루한 공방을 벌여야 했다. 지금도 반(反)회장파 입장에 선 일부 주민 사이에서는 B씨를 회장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낮은 투표율로 대표되는 주민들의 무관심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올 초 서울 강북의 C아파트(2300여 가구)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선거 참여자가 310여 명에 불과했다. 한 후보가 150표를 얻어 48%를 약간 넘는 득표를 했지만 전체 가구수 대비 득표율은 6.5%에 그쳤다. 아예 투표율 미달 사태가 나는 곳도 있다. 지난해 4월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는 동 대표 선거를 했지만 4개 동에서 투표율 미달로 동 대표를 뽑지도 못했다.

 현행 공동주택 관리규약에 따르면 회장 선거 투표율이 10%(500가구 이상 기준)만 넘으면 선거를 통해 당선된 회장·감사 등의 자격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주민들의 무관심이 아파트 부실 관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원들의 비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의 투표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대안들이 모색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대전의 한 아파트는 대표자 선출에 온라인 투표를 도입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을 통해 선거인 본인 인증부터 투·개표까지 투표의 전 과정이 온라인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투표율이 50%를 훌쩍 넘었을 뿐 아니라 선거 비용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주민 참여가 낮은 데는 아파트 입주민의 50~60%가 세입자인 탓이 크다. 언제 이사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파트 일에 무관심해진다. 전문가들은 소유주든, 세입자든 자신이 매달 내는 돈으로 아파트가 운영되는 만큼 주인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경기대 이병철(회계학) 교수는 “주민들이 선거에 관심이 많으면 아파트 비리가 줄 수밖에 없다”면서 “전제 조건은 어떤 사람이 후보로 나오는지 관련 정보가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사전투표와 온라인 투표 등 투표율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특별취재팀=강기헌·안효성·윤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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