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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가 이 건물이 세계 IT콘텐트 공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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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구글캠퍼스가 입주한 영국 런던 동부 올드스트리트의 한 건물. 150년 전 지어져 외관은 허름해 보이지만 이곳에서 싹을 틔운 기업 중 274개사가 최근 1년 새 투자 유치에 성공하는 등 런던 구글캠퍼스는 ‘아이디어 공장’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최준호 기자]
지하 1층 카페에 있는 구인·구직 게시판.

“팀당 2분씩 짧게 회사 소개를 해주세요. 다른 분들은 이 회사에 대해 뭐든 궁금한 게 있으면 손을 들어 질문하세요.”

 14일(현지시간) 오후 7시 영국 런던 동부 올드스트리트. 어둠이 내려앉은 빅토리아풍 6층짜리 건물 4층에 50여 명의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이들 중 5개의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 대표가 돌아가며 회사와 서비스에 대해 소개하고, 다른 참석자들과 토론을 벌이는 자리였다. 청년들이 모인 곳은 ‘구글캠퍼스’다. 이곳은 영국의 대표적 정보기술(IT) 창업 클러스터인 ‘테크시티’에서도 중심부에 자리 잡았다. 150년 전 지어진 이 건물은 원래 빈민가 속 인쇄공장이었다. 구글은 2012년 4월 이곳에 ‘구글캠퍼스’라는 이름으로 IT 분야 스타트업들을 위한 창업 공간을 만들었다.

 런던 구글캠퍼스가 유럽 내 대표적 IT 창업 생태계로 주목받고 있다. 문을 연 지 2년6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지난 1년간 내부 스타트업 중 274개가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총 투자금액은 3400만 파운드(약 580억원)에 달한다. 스타트업들은 구글캠퍼스에 자리 잡은 이후 평균 25% 이상 매출이 성장했다. 200개 스타트업이 상주해 있고 하루에만 2500명 이상이 캠퍼스를 이용한다. 소셜미디어 분석업체 ‘세컨드싱크’는 올 3월 말 트위터에 인수됐다. 온라인 데이터 보안 관련 스타트업인 ‘콜사인’은 베타 버전(테스트용)만으로 300만 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소문난 집에 손님이 몰려오는 법이다. 런던 구글캠퍼스는 영국인만의 창업 공간이 아니다. 지난 한 해 61개국에서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캠퍼스를 찾았다. 내부 창업가들의 출신 국가는 1년 전 22개국에서 33개국으로 늘어났다. 영국인 비중은 절반에 불과하다. 벨기에 출신의 알렉산드라 벤토나우트(29)는 “창업가로서 배경도 경력도 모자라지만 캠퍼스에서 다른 스타트업들을 만나 네트워크를 쌓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런던 구글캠퍼스는 스타트업들이 지하 1층에서 시작해 덩치를 키울수록 위로 올라가는 독특한 방식을 운영하고 있다. 지하 1층은 일종의 ‘창업카페’다. 커피나 먹을거리 등을 파는 곳을 가운데 두고 앞뒤로 곳곳에 크기가 다른 테이블을 설치했다. 100Mbps급 무선 인터넷은 공짜다. 주로 예비창업자들이 모여 창업 정보를 교환하고 업무 공간으로 이용한다.

 안내데스크와 회의실 등으로 구성된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니 ‘테크허브’라는 이름의 구글캠퍼스의 파트너사 공간이다. 구글의 지원을 받아 스타트업들에 업무 공간과 사무기기 등을 저렴하게 대여해준다. 월 275파운드(약 46만7000원)만 내면 전화기와 인터넷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책상 하나를 전용으로 빌릴 수 있다. 책상을 전용으로 쓰지 않고 빈자리를 찾아 사용하는 방식이라면 1년에 375파운드(약 63만7000원)만 내면 끝이다. 1인당 한 달 평균 대중교통비 140파운드(약 23만8000원)의 살인적 고(高)물가와 런던 금융가가 몰려 있는 ‘더 시티’에서 전철로 10분이면 닿는 지리적 위치를 고려하면 사무 공간 임대료가 얼마나 싼지 실감할 수 있다. 3층 역시 테크허브가 운영하는 공간이지만 2층보다는 덩치가 커진 스타트업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각종 행사장으로 쓰는 4층을 지나 5층으로 올라가니 에인절투자법인 ‘시드캠프’와 ‘업유럽’이 입주해 있다. 이들은 구글캠퍼스에서 열리는 마라톤식 아이디어 경진대회(해커톤)나 시제품을 선보이는 ‘데모데이(Demo-Day)’에 참가해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투자 심사도 하고 조언도 해준다. 꼭대기 층인 6층은 구글캠퍼스 직원용이다.

 사실 구글캠퍼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시설이 아니라 콘텐트다. 창업을 위한 온갖 이벤트들이 하루에도 3~4개, 한 달이면 100개 이상 열린다. 이곳의 이름이 ‘캠퍼스’인 것은 학생들이 배움의 전당인 대학 캠퍼스에서 지식을 쌓듯 창업을 위한 지식과 정보를 쌓고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구글은 런던에 이어 2012년 말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에 두 번째 캠퍼스를 만들었다. 내년 초에는 서울에 아시아 지역 최초로 구글캠퍼스가 들어선다. 글로벌 대표 IT기업으로 급성장한 구글이 그들의 성공 방정식을 후배 기업들에 내놓은 것이다. 런던 구글캠퍼스의 센터장 세라 드링크워터는 “창업에 나선 사람들을 위해 네트워크를 만들어주고 창업 관련 각종 교육을 통해 자신감을 심어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런던=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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