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고용 공시제 폐기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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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경영계가 올해 7월부터 시행된 고용형태공시제 폐지를 공식 거론하고 나섰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기업의 인력운용 상황을 공표하고, 이를 통해 고용구조를 바꾸도록 여론을 유도하는 경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더욱이 고용형태공시제가 대기업의 중소기업 영역 침범, 문어발 확장과 같은 기존 제도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고용형태공시제는 기업이 직접 고용한 인력과 소속 외 근로자(하청업체 등)를 구분해 공표토록 하는 제도다. 올해 도입됐으며, 매년 3월 조사해 7월쯤 공개한다.

기업별 고용형태가 공표되자 노동계를 중심으로 “대기업이 간접고용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는 비난여론이 비등했다.

 최근 고용노동부와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 제도와 관련된 비공개 간담회를 각각 열고 각 기업 인사노무담당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인사노무담당자들은 ▶대·중소기업 간 공정거래 원칙 위배 ▶대기업의 문어발 확장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정책과 배치 등의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경총은 이에 따라 다음달 4일 이사회에 고용형태공시제 문제를 정식 안건으로 상정할 방침이다. 회원사의 의견을 수렴한 뒤 정부에 폐지 또는 개선을 공식 요청한다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노·사·정, 학계가 참여하는 토론회도 조만간 열 계획이다.

 간담회에서 H건설 관계자는 “실내 인테리어, 전기설비와 같은 전문건설업체와 손잡고 공사를 하는 것은 중소기업 육성차원에서 적극 권장해왔던 것”이라며 “하지만 고용형태공시제는 이들 독립 전문회사 근로자를 소속 외 근로자로 등록하게 해 마치 대기업이 비용절감을 위해 외주를 주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을 대기업이 책임져야 한다면 전문건설업체를 인수합병하는 형태로 사업을 확장해야 하는데, 이는 중소기업 영역을 침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모 전자업체 관계자는 “요식업이나 보안과 같은 협력업체 근로자를 소속 외 근로자로 분류해 대기업의 직접 고용을 압박하고 있다. 만약 이런 업종에 대기업이 진출하면 문어발식 확장이란 비판이 나올텐데 이는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일부에선 인력의 이중장부화에 대한 걱정도 나왔다.

 조선업체 인사담당자는 “공시한 것을 보면 동일한 근로자를 협럭업체는 정규직원으로 공시하고, 우리는 소속 외 근로자로 공시했다. 이중장부 같은 이런 불합리한 제도는 결국 대기업의 이미지만 나쁘게 한다. 조선업종 협력업체 근로자는 다른 업종의 정규직 임금을 웃도는 급여와 최상위 복지수준을 누리는데, 이를 나쁜 일자리를 인식하게 한다”고 말했다.

 G정유회사는 “장치산업은 3~4년마다 전문 정비업체에 의뢰해 대대적인 정비작업을 한다. 공시제를 그대로 이행하면 3~4년 주기로 소속 외 근로자가 대폭 늘어나게 된다. 이에 따른 여론 악화를 어떻게 감당하나”라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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