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 대통령, 측근 비리로 곤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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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비교적 깨끗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사진)이 측근들의 스캔들 탓에 수세에 몰리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이 전했다.

최근 브라질 정가를 달구고 있는 스캔들의 골자는 국가 기관인 우편공사의 한 고위간부가 룰라 대통령 측근 인사의 이름을 팔아 납품업자에게 뇌물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비리에는 룰라 정권 내 거물들이 연루돼 있다. 이 사건은 지난달 한 주간지가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 사건으로 룰라 정권이 만만찮은 타격을 받게 된 것은 우편공사 간부가 뇌물을 요구하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가 TV에 여러 차례 방영되면서부터다. 브라질 의회는 즉각 이 사건의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이 바람에 룰라 대통령의 개혁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입법 활동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룰라 대통령은 재계가 오랫동안 요구해 온 대로 기업의 세 부담을 덜어주는 쪽으로 세제 개편을 추진 중이다.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해 노동 관련 법규를 바꾸는 작업도 진행해 왔다.

룰라의 노동자당은 현재 소수당과 연합해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데 야당은 이번 비리의 중심 인물로 연합 정당을 이끌고 있는 로베르토 제퍼슨을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제퍼슨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룰라 대통령도 정권 안정을 위해 그를 감쌌다. 문제는 룰라 대통령의 인기가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5일 공개된 데이타폴하 여론조사연구소의 조사 결과 지난달 말 현재 그의 업무 수행 지지도는 35%로 주저앉았다. 이는 지난해 12월에 비해 10%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며, 취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설문 응답자들은 주된 이유로 부정부패를 꼽았다. 그 전에는 범죄나 폭력이 인기 하락의 주요 원인이었다.

2003년 초 출범 이후 룰라 정권은 크고 작은 비리 의혹에 시달려 왔다. 최근에는 사회복지부 장관이 가짜 보증서로 국영 은행에서 대출받은 일도 있었다.

야당은 이런저런 스캔들을 호재로 삼아 룰라 정권을 강하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전임 대통령인 페르난두 엔리케 카르도주는 "현 정권의 작태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술 취한 칠면조와도 같다"고 비난했다. 대통령 주변 인물들도 정권의 부도덕성을 꼬집고 있다. 룰라 대통령 집권 첫 2년 동안 대변인을 지냈던 리카르도 코초는 인터넷에 올린 글을 통해 "정권 내부에 도덕적 타락 기미가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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