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야의 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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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월은 빠르다. 정치적 격변의 여진속에 맞이한 신서년이 벌써 저물다니. 내일이면 어김없이 보신각종이 서른세번 울려 1981년의 잔재를 몰아내고 1982년 임술새해를 맞이한다.
비록 79년 중건때 금이 가버린 5백14년 묵은 늙은 종이지만 보신각타종은 서울시민의 유일한 제야행사. 그래서 목멘 소리로나마가는 밤과 오는 새벽을 알리기도 했다.
서울시는 새종을 만들 때까지는 제야의 종 행사를 멈출수가없다면서 단지 올해부터 3·l절과 광복절엔 타종을 안하고 제야의 종만 침으로써 종의 수명을 최대한 연장하는중이라고 말한다.
왜 보신각종은 서른세번을 타종할까. 물론 광해군때부터 파루, 즉 통행금지를 풀어 사대문을 여는 신호로 쳐온 것이지만 꼭 서른세번이라야될까.
그것은 아무래도 불교의 우주관에 연유된 것같다. 불교에선 우주를 욕계·인계·무색계의 삼계로 구분하며 탐욕이 있는 세계, 즉 욕계는 다시 여섯가지로 나뉜다.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계·천계가 바로 그것이다.
맨마지막 천계는 또 여섯하늘로 구성되는데 두번째의 예리천이 바로 제석이 다스리는 하늘이다. 예리천은 수미산 꼭대기에 있다하며 사방에 8천씩 32천이있고 중앙의 제석천까지 합쳐 33천이 있다. 곧 인간이 아닌 천중의 세계다.
이들 서른셋의 천중은 3재일마다 선법당에 모여 법답고 법답지 못한 일은 평가한다. 불교의 광대무변한 자주관도 놀랍지만 일상사의 잘잘못을 하늘에 의탁하는 착상도 오묘하다.
또 제석은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을 보호한다. 결국 인간이 서른세번의 종을 울림은 천상세계에 널리 고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 33천엔 부처가 다녀간적도 있다. 부처가 일찌기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위해 석달동안 여기서 설법하고 보부를 타고 인간세계에 내려왔다 한다.
종을 울려 하늘에 고함을 기현교에서도 같은 의미를지닌다.
「토마스·만」이 『선택된인간』에서 해석한 로마사원의 종소리는 곧 『주여, 저는 당신에게 희망을 품고 있나이다』의 뜻이다. 아울러 종소리의 메아리는 『그 죄가 나타나지 않는자는 복될지어다』의.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한해를 보내는 종소리가 듣는이의 참매와 정화를 기약할수 있을지, 해마다 겪는 행사지만 또한번 감회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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