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경영권 빼앗는 자율협약은 권한 남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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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신흥철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기업 구조조정은 과다부채, 유동성 부족 등으로 경영위기에 빠진 기업의 회생을 도모하기 위한 절차다. 때로는 기업 스스로 자산을 매각하는 등 자발적인 형태로 이루어지기도 하나, 채무자인 기업의 힘만으로 부족할 때는 채권자 주도형 또는 법원 주도형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채권자 주도형 구조조정 방식으로는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자율협약) 및 재무구조 개선작업(워크아웃)이 있고, 법원 주도형 구조조정 방식으로는 법정관리(기업회생)가 있다. 부실기업 처리의 강제성을 따지면 법정관리>워크아웃>자율협약 순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기업의 자율성이 가장 많이 보장되고, 따라서 기존 경영자가 누리는 효과가 가장 커야 할 자율협약이 실제로는 그렇게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자율협약이 진행된 몇몇 사례를 보면 문제점이 확실히 드러난다. STX, 금호, 동부 등의 사례에서 채권단은 예외 없이 기존 경영진의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100대 1감자 등을 통해 경영권을 박탈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감자가 경영위기에 빠진 모든 기업에 대해 모두 똑같이 적용돼야만 한다는 필요성과 공정성 그리고 적법성의 근거는 찾기 어렵다. 특히 최근에는 동부제철이 타 기업과 비교하여 가혹한 잣대가 적용되고 있다는 형평성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국책은행이 포함된 채권단이 자율협약 대상 기업들에 서로 다른 잣대를 적용하여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하면 정부 차원에서 특정기업은 봐 주고 다른 기업은 죽인다는 의혹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3자(법원)가 공정성을 판단하는 법정관리와 다르게 자율협약은 일정한 기준 없이 채권단이 주도권을 갖게 되어있다. 통상 유동성 압박에 처한 기업이 채무조정 과정을 거쳐 자율협약 단계에 이르면 기업과 채권금융기관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조성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자율협약에 의한 경영권박탈은 다분히 징벌적 형태를 띠게 된다. 공정성·형평성 이슈가 징벌적 감자의 형태로 나타나면 기업들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다.

 기업에 있어서 경영권은 귀중한 사유재산권이다. 외부 환경의 변화로 일시적인 자금 경색을 겪고 있는 기업에 대해서까지 무조건적으로 경영실패라는 주홍글씨로 낙인을 찍고 경영권을 박탈하는 것은 채권단의 권한남용이자 사유재산권 침해다.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현재의 자율협약은 지양돼야 한다. 만약 합리적이고 공정한 방식으로 자율협약 제도가 운영되지 않는다면 동부 이후 자율협약을 신청하는 기업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특히 대주주 경영자는 징벌적 경영권박탈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이를 피하기 위해 대주주가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을 통한 선제적 구조조정의 기회를 택하기보다는 법정관리가 불가피한 시점까지 무리한 경영을 고집하게 될 경우 국가경제의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향후 채권단이 시장경제의 안전판으로서 적법하고 타당한 방식으로 공정성과 형평성을 유지하면서 제대로 자율협약 제도를 운영할 것을 기대해 본다.

신흥철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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