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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사진 게재 ‘0’…최근 사흘 연속 제목서도 사라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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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38일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온갖 설이 난무하고있다. 이런 정황을 북한 노동당 기관지이자 북한 매체 가운데 최고의 권위를 가진 '노동신문'은 어떻게 전하고 있을까.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와 중앙SUNDAY는 김정은이 공개석상에서 사라진 9월4일부터 11일까지 38일치 노동신문을 살펴봤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김정은에 대한 언급이 어떻게 변했는지 분석했다. 1960∼70년대 미국 정보기관이 철의 장막에 싸인 소련의 최고 지도부 동향을 파악하기위해 모스크바 관영매체인 '프라우다'나 타스 통신 기사를 한자 한자 분석하며 행간을 추적했던, '크렘리놀러지(Kremlinology)의 북한판인 셈이다.

분석 결과 김정은의 장기부재는 노동신문 지면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38일 동안 신문 1면 제목에 '김정은'이 언급되지 않은 날이 16일에 달했다. 아예 노동신문 전체 6면에 걸쳐 제목에서 김정은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은 적도 7일이나 된다. 이 가운데 10월5일~7일은 연속으로 '김정은'이 사라졌다.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김정은이 전혀 언급되지 않은 기간은 4일뿐이었다.

지면의 절반을 채울만큼 큰 사이즈로 게재되온 김정은 사진도 9월3일 모란봉악단 음악회 관람 모습을 게재한 4일자 이후로 37일간 사라졌다. 대신 그가 국내외에 서한·선물을 보냈거나 외국 고위 인사들로부터 축전을 받은 소식은 1면에 집중 소개됐다. 과거엔 주로 2∼4면에 실렸던 내용이다. 활자로라도 김정은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정은 없이 김일성·김정일 사진만 나열

10월10일은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 69주년일로 김일성(4월15일)과 김정일(2월13일) 생일 및 공화국 창건일(9월9일)과 더불어 북한의 4대 국경일의 하나다. 노동신문은 이날을 기념하는 사설을 1면에 실었다. 김일성-정일 부자 사진이 정면에 크게 실렸다. 지난해 판박이다. 지난해 신문을 그대로 내보낸 듯하다. 하지만 2면은 다르다. 지난해 2면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께서 조선로동당 창건 68돐에 즈음하여 금수산 태양궁전을 찾으시었다'란 제목과 함께 하단에 김정은이 주요 인사를 이끌고 궁전 복도를 걸어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실었다. 반면 올해 노동신문 2면엔 김정은 대신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전 모습들만 화보로 메워져있다.

김정은의 '실종'은 11일자에도 이어진다. 신문은 전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박봉주 내각 총리, 황병서 노동당 총정치국장 등이 금수산 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전했지만 김정은에 대해선 '꽃바구니를 보냈다'고만 언급했다. 김정은이 참배하지 않았음을 공식 확인해 준 셈이다.
창건일 전날인 9일자 보도도 흥미롭다. 1면 왼편 상단에 해외 축전 소식을 소개했다. '팔레스티나 국가(북한에서 팔레스타인을 일컫는 명칭)' 대통령과 주조 외교단이 꽃바구니와 축하 편지를 보낸 사실을 연달아 보도했다. 지난해 이와 유사한 기사는 2면에 실렸던 만큼 비중이 높아진 셈이다. 눈길을 끄는 건 &quot;꽃바구니에 댕기에는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 각하의 건강을 삼가 축원합니다>라는 글발이 씌어져 있었다

&quot;라는 말미 대목이다. 두 기사에 동시에 적시돼 있다. 작년엔 없었던 내용이다. '김정은 건강 이상설'이 공공연히 퍼져 있는 현 시점에서 이런 문구를 썼다는 점, 1면 톱기사로 예년에 비해 비중있게 보도한 점 등은 김정은에 대한 흉흉한 소문을 의식해 '외국 요인들의 김정은 건강 기원'을 의도적으로 부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흘 연속 제목에서 김정은 언급 안 돼

10월8일은 3년전 숨진 김정일이 당비서에 추대된 지 17주년 기념일이다. 노동신문은 1면에 김정일의 업적을 칭송하는 사설을 실었고, 2면엔 관련 중앙보고대회를 게시했다. 하지만 지난해 같은 날 노동신문은 김정은의 활동상을 전면에 부각했다. 1면과 2면에 걸쳐 김정은이 국가과학원 중앙버섯연구소를 방문하는 모습을 실었다. 김정일을 추모하는 기사는 3면에 배치했다. 김정은이 장기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신문이 왜 '살아있는 권력'을 우선해온 지난해까지의 편집 스타일을 뒤집었는지는 의문이다.

노동신문이 평상시 같으면 김정은이 다뤄질 게 분명한 지면에 김일성&#183;김정일 관련 기사를 싣는 현상은 지난달 초순부터 여러 군데서 발견됐다. 김정은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상황에서 '백두혈통'을 강조해 김정은 체제의 정당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있다고 북한 소식통은 전했다.

김정은 사진이 한번도 실리지 않았다는 점도 과거 김정일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김정일도 2008년8월15일부터 10월5일까지 41일간 공개석상에서 사라진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노동신문은 8월25일과 9월9일 김정일의 과거 활동 사진을 소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노동신문 1면을 주로 장식한 건 김정은 현지 지도 사진이었다. 김정은이 노동자나 주민을 격려하고, 화통하게 웃는 모습이 12회 실렸다. 올해 그 자리를 대체한 게 김정은이 편지나 선물을 보냈다는 기사다. '서신 통치'인 셈이다. &quot; '고산과수농장'에 선물을 보내시었다&quot;(9월5일), &quot;고 김남오 영전에 화환을 보내시었다&quot;(9월12일) 등이다. 9월20일자엔 초급 일꾼대회 참가자들이 김정은에게 보낸 서한도 1면에 실렸다. 과거라면 2면 이후에 실릴 기사들이다.

최진욱 통일연구원장은 &quot;노동신문이 '외국 인사들이 김정은에게 축전을 보냈다''김정은이 국내외에 서한이나 선물을 보냈다는 기사'를 1면에 집중적으로 전진 배치하고있다.이는 평상시에 비해 크게 다른 측면&quot;이라며 &quot;김정은의 장기공백과 관련한 의혹을 덮으려는 의도가 분명해보인다&quot;고 분석했다. 이어 &quot;다만 9월16일자와 10월1일자 1면에 '김정은이 노작을 출판했다'는 기사가 실린 건 그의 신변에 큰 이상이 없다는 추측을 가능케하는 대목&quot;이라며 &quot;김정은의 활동은 노동신문이 조작해서 보도하지 않기 때문&quot;이라고 덧붙였다.

최민우 기자, 통일문화연구소 정영교 연구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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