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새로운 아버지 역할을 모색하는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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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형경
소설가

그는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성장기를 보냈다. 성장기에 그가 목격한 아버지들은 가족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 자녀를 통제하는 심판관, 집에서 잠만 자는 지친 노동자였다. 결혼 후 그는 꿈꾸던 아버지 역할을 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기대와 달랐다. 아내는 더 헌신적인 보살핌을 원했고, 자녀들은 아버지를 놀이 상대로만 여기는 듯했다. 그는 딜레마에 빠진 기분이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 요즈음 젊은 아빠들은 다양한 모색과 시도를 하는 듯 보인다. 새로운 부모 역할을 제안하는 책에는 구체적 세목이 나열된다. 말로 가르치려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라, 자녀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고 그들 수준에 맞추려 노력하라, 자녀들의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하라, 자녀의 이야기를 판단 평가 탐색 충고하지 말고 들어라 등등. 하지만 현실의 부모들은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버지에게 받은 것을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부모 역할 중 가장 먼저 성취해야 하는 일은 자기 치유다.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부모 이미지, 그 부모에게 보상을 바라는 내면 아이를 떠나 보내야 한다. 동시에 부모의 언행이 자녀의 인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해야 한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사회의 축소판 같은 존재다. 아버지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는 성인이 된 후 아들의 사회적 태도를 결정한다. 지배자나 심판관 아버지를 둔 아들은 사회생활에서 실수나 실패에 대해 두려워하는 성향을 갖게 된다. 아들에게 가장 좋은 아버지는 관대한 동반자다. 자녀의 잘못에 대해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거기에 “아빠도 그랬어”라고 덧붙이면 아들은 아버지를 든든한 동반자로 인식하게 된다. 그런 아들은 성인이 된 후 새로운 시도나 도전 앞에서 남다른 창의성을 발휘하는 사람이 된다.

 딸에게 아버지는 자신감의 원천이다. 아버지의 전폭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자란 딸은 자신을 존중하면서 당당한 태도로 성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세상이 자기를 수용하고 지지한다는 믿음 위에서 커다란 사회적 성취를 이루어 내기도 한다. 아버지 역할에서 중요한 것은 몇 가지 행동 양식이 아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고, 자녀가 갖기 바라는 역량이나 성품을 부모가 먼저 갖추는 것이다. 부모에게 없는 자질을 멀리 나무에게서 얻어와 스스로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자녀는 없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