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진 촬영용' 6·15행사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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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9일 막 내린 남북 차관급회담은 북한에 대한 비료 지원의 대가로 6월 15일 평양에서 열릴 민족통일대축전에 장관급 대표단 파견과 6월 21일 남북 장관급회담의 성사를 얻어냈다. 이후 6.15 남북 공동행사는 정치권 인사들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이번 행사의 주연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집권여당의 대표를 비롯한 유명 정치인들은 참석 티켓을 얻기 위해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경쟁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 한다.

지난 5월 8일 팻 로버츠 미국 상원 정보위원장은 '북한이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김정일은 핵을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 요구를 관철시킬 유일한 카드로 보고 있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또한 존 맥롤린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대리는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며 다음 단계로 장거리 미사일을 실험 발사한다면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한다. 그리고 지난 1일 북한이 동해상에 발사한 미사일에 대해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는 '탄도형이 아닌 제3형 미사일 개발의 일환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 북한의 유력한 정보 소식통에 의하면 이 미사일은 미국의 북폭 가능성에 대비, 평택 미군기지를 목표로 한 소형 핵탄두 탑재형 미사일 발사 실험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북핵을 둘러싼 북.미 간 갈등이 날로 격화하고 있는 국면에서 우리의 대북정책 책임자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최근 정동영 장관과 북한 노동당 임동옥 부부장이 남북협상의 핫 채널로 부상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여러 유력한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임동옥 부부장은 75세의 노인이며 현재 폐암 치료 중이라는 것이다. 이 소식통들의 분석이 맞다면 단단하고 지속 가능한 남북협상 채널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셈이다. 남북협상에 임하면서 북한 측은 비료.식량 원조 등을 얻어낼 실무 채널만 가동시킬 뿐이고, 남한의 일부 정치인은 그림 좋은 사진을 만들어낼 협상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판단도 가능하다. 이 같은 상황에선 6월 남북 장관급회담의 앞날은 밝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발발 전 조선의 조정은 당리당략에 얽힌 정쟁으로 날을 지우새면서 일본 침략에 대한 준비를 못한 채 전쟁을 맞이해 참혹한 패배를 거듭하게 된다. 이순신만이 철저한 사전준비와 정보수집, 치밀한 전략전술의 개발로 일본을 물리친다. 오늘의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는 임진왜란 발발 국면 못지않게 격변기며, 위기상황에 놓여 있다. 그런데 정치권은 현재 핵심 현안인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두 개의 수레바퀴인 한.미 간의 긴밀한 협력과 책임 있는 남북협상 중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진전시키지 못한 채 자주파니, 동맹파니, 균형자론이니 하는 어지러운 말잔치나 벌이고 있는 것이다.

6월에는 한.미 정상회담, 한.일 정상회담, 남북 장관급회담 등 한반도의 운명과 관련된 중요한 협상들이 연이어 있게 된다. 아직 우리는 6.15를 기념하여 '민족통일대축전'이라는 잔치나 벌일 한가한 상황이 아니며, 더군다나 지도적 위치에 있다는 정치인들은 나라와 국민의 안위는 뒤로한 채 자신들의 입신양명을 위한 사진 몇 장 찍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자성해야 할 것이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좀 더 진지하게 북핵 문제에 대한 해법을 고민하여 하나라도 좋은 아이디어를 생산해내기 바란다.

이렇게 엄중하고 복잡한 오늘의 한반도 정세 속에서 이순신 장군이라면 어떻게 대응했을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필사즉생(必死卽生), 유비무환의 자세로 철저한 사전준비에 기초하여 어떤 상황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전략전술을 개발해 냈던 그 큰 인물이 다시금 그리워진다.

구해우 미래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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