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담도 개발 의혹] 10년 동안 쉬쉬 … 준공 후 용도 변경 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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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담도 일대의 바다는 매립이 되더라도 복합 관광.레저단지를 조성할 수 없는 지역이다. 도로공사는 이 같은 사실을 숨긴 채 외자 유치를 추진해 국가신뢰도에도 적지 않은 상처를 주게 됐다. 이런 사업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1995년 처음 이 사업을 승인해 줄 때부터 99년 싱가포르 ECON사와 협약을 맺고 사업을 진행할 때까지 10년 동안 이런 위법 사실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행담도 개발을 맡은 행담도개발㈜ 관계자는 "2001년 사업청산 문제가 불거지면서 어렴풋하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알았지만 국가산업단지에 묶여 복합레저시설로의 개발 자체가 안 된다는 사실은 최근에야 알았다"고 했다. 그는 "도공 측이 이런 사실을 숨겼다"고 덧붙였다.

도공과 행담도개발㈜의 분쟁 중재에 나섰던 청와대 동북아시대위원회는 이 사실을 알았을까. 불평등 계약 논란이 있는 도공과 행담도개발㈜ 간의 2004년 주식 선매수 계약조차 모른 상태에서 행담도 개발사업을 지원했던 점을 감안하면 몰랐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상 국가산업단지 안에서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관광.레저산업을 할 수 없다. 휴양시설을 설치할 수는 있지만 단지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이용하는 시설로 제한된다. 하지만 도공의 행담도 개발 계획은 일반인을 상대로 한 복합레저시설 건설이다. 이를 통해 서해대교를 관광명소로 만들어 외국 관광객도 유치하겠다는 구상이다. 만약 여기에 복합레저시설을 건설하려면 행담도 인근이 산업단지 지역에서 해제돼야 한다.

도공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업을 추진했고, 산업단지 해제를 위한 노력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매립을 마친 뒤 거꾸로 절차를 밟아가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행담도개발㈜이 작성한 내부 문건은 "산업단지 내에서 판매.숙박시설 등은 산업단지 내의 근로자나 이용자의 편의를 목적으로 하므로 법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도 "산업단지 개발을 위한 실시 계획 인가를 받지 않고 추진했다"고 적고 있다.

도공이 매립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도 편법이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도공은 2002년 10월 31일 해양수산부로부터 24만㎡의 매립 허가를 받았다. 도공은 개인 자격으로 매립 허가를 받았는데 공유수면 매립법상 개인은 10만㎡를 초과해 매립할 수 없지만 매립 지역이 국가산업단지라는 명분으로 24만㎡의 매립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도공은 이 과정에서 국가산업단지 지역에서 매립과 같은 사업을 하려면 '산업단지 개발 계획 실시 계획 인가'를 제출해야 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공유수면매립법을 이용해 매립허가를 받았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산업입지 관련 법상으로는 개발 목적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도공이 실시 계획 인가를 받는 등의 절차를 밟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그래서 도공은 개인자격으로 매립 면허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도공은 매립 준공 뒤에 시설 설치를 위해 산업단지 해제 등의 조치를 별도로 취해야 한다. 행담도개발㈜ 관계자는 "결국 도공이 외국기업을 상대로 설명을 할 때부터 속인 셈"이라고 말했다.

도공은 행정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데 따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전망이다.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는 감사원 관계자는 "사업이 상당히 지연되거나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가장 큰 비용이 드는 경우는 행담도 개발 사업 자체가 좌절되는 경우다. 사업이 좌절돼 행담도개발㈜이 소송을 제기할 경우 그동안의 손실을 전부 물어줘야 한다. 행담도개발㈜은 손실 규모가 38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도공은 매립 면허를 개인자격으로 받았기 때문에 매립된 땅을 자산으로 보유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이 공적 매립 면허를 받을 경우 매립한 토지를 모두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자격으로 취득하면 매립하는 데 들어간 사업비만큼만 받을 수 있다. 기준은 매립 완공 시점의 인근 땅값이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땅은 국가에 귀속된다.

이대로라면 도공은 자칫하면 땅도 제대로 못 건지고, 돈도 벌어들이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할 수 있는 셈이다.

행담도개발㈜은 "건교부와 전담반을 구성해 산업자원부(외국인 투자 협조), 문화관광부(관광시설 설치 협조), 충남도(산업단지를 이용한 매립에 대한 명분을 쌓기 위해 지역발전 극대화 지원책 협조), 건교부(도로구역 설정 변경), 해양수산부(공유수면 활용 협조) 등과 협조해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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