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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까말' 개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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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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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론이 움직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반대했다. ‘블랙홀’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국회는 그칠 기색이 아니다. 어떤 이는 박 대통령이 말을 바꾼다고 한다. 따져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권력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 알면서도 두루뭉술하게 넘어간 부분이다. 이제 그것까지 솔직하게 톡 까놓고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분권형 개헌’이다. 대통령은 외교·국방만 맡고, 내정은 내각제 방식의 총리가 담당하는 구조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대통령제를 더 선호한다. 이 부분을 어물쩍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학자들이나 국회의원들은 ‘분권형’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염증이다. 최근 거론하는 개헌은 대부분 분권형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은 ‘4년 중임 대통령제’였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맞추자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것도 4년 중임제다. 국회의 개헌안은 분권형이다. 18대 국회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이 마련한 1안, 이번에 정의화 의장에게 보고된 개헌안도 분권형이다. 그러니 박 대통령이 말을 뒤집은 건 아니다.

 정치인에게 개헌은 이해관계다. 쉽게 말해 ‘내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다. ‘그렇다’고 생각되면 분권형 개헌에 반대다. 모든 것을 다 차지한다는 유혹이 너무 크다. YS·DJ는 대통령제, JP는 내각제를 주장한 이유다. 5공 말기 ‘이민우 파동’ 때 YS와 이민우 총재가 다른 길을 선택한 바탕도 그런 계산이다.

 대통령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개헌은 어려워진다. 유력한 차기 후보가 등장하면 내각제나 분권형을 거부한다. YS는 ‘내각제 각서’에 직접 서명했지만 안면을 몰수하고 뒤집어버렸다.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후보는 중임제 개헌조차 반대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판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나 박근혜 후보가 그랬다. 미래 권력이 반대하면 의원들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

 헌법 128조 ②에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은 개헌 당시 대통령에게는 효력이 없도록 못박아 놓았다. 현역 대통령으로선 아무 소득도 없이 자기 임기를 반 토막 내기 싫다. 현역 대통령이 반대하는 개헌은 어렵다. 하지만 유리한 요인도 있다. 당장 차기를 장담할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개헌 내용에 따라서는 박 대통령의 이해관계도 달라질 수 있다. 박 대통령의 강력한 카리스마라면 레임덕을 피해 오히려 오랫동안 영향력을 유지할 수도 있다.

 정작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가. 지탄의 대상인 국회에 더 큰 권한을 넘길 건가. 협상과 타협의 정치력은 바닥났다. 선진화법은 오히려 불능 국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 현상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결과물이다. 대통령 선거는 모든 것을 건다. 선거에서 패배한 당은 곧바로 다음 선거를 준비한다. 다음 선거만 생각하고 흔든다. 노무현 탄핵, 미국산 쇠고기 촛불시위…. 국정 마비의 일상화다. 권한을 나누면 책임을 나눌 수 있다. 세월호 참사가 생기면 바로 내각이 책임지고 국정을 복원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을 건 대통령 선거인데도 신중하게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니다. 지역주의 같은 비이성적 요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왔다. 이념적 극단주의도 고개를 들고 있다. 깜짝쇼가 판세를 좌우한다. 그런 투표로 우리 미래를 결정할 수는 없다.

 솔직히 제2의 김대중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지역주의가 쉽게 무너질 것 같지는 않다. 선거 때마다, 특히 5년마다 전국적으로 지역 대결을 벌이는데 바람이 잦아들 수 있겠는가. 정책보다 지역으로 연대를 해야 한다. 오죽하면 노무현에서 안철수까지 ‘데릴사위’를 들이려 했을까. 절망하면 이성을 잃고 저항하게 돼 있다. 나라의 반쪽에 사실상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구조는 정상이 아니다. 새 정치의 기본인 지역주의 타파가 여기에 걸려 있다.

 대통령제에서는 사람을 키우기도 어렵다. 김영삼 정부 말기 ‘9룡’은 대통령 선거와 함께 한꺼번에 사라졌다. 인물을 키우기는커녕 한꺼번에 탕진하는 구조다. 정치투기꾼만 양산한다. 줄만 잘 서면 벼락출세 길이 열린다. 분통 터지는 낙하산이 어디 한둘인가. 욕은 먹지만 선거를 통해 거르고, 의회에서 국정 경험을 쌓은 의원들과 비할 바가 아니다.

 정권 탈환만 노리니 레임덕이 점점 빨라진다. 2016년 4월엔 총선이다. 내년 후반엔 총선 준비에 들어간다. 개헌을 하고 말고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국가 쇄신’도 난장판 정치부터 바꾸어야 가능하다.

 개헌 방향을 솔직히 털어놓고 공론에 붙여 보자. 개헌 얘기를 한다고 다른 일을 못할 이유가 없다. 정부가 나서는 것도 아니다. 지지 여론이 없다면 접으면 될 일이다. 국민이 원한다면 피할 이유가 없다.

김진국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