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진국 칼럼

21년의 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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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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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기업 CEO급 친구가 있다. 그는 내 연봉의 네 배가 넘는 세금을 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기자)들이 높은 사람을 만나고 다닐 때 나는 복사용지를 들고 뛰어다녔다. 그러니 이제 내가 월급을 더 받는다고 억울해하지 마라.” 억울할 이유가 없다. 그가 미안할 일도 아닌 것을 미안한 듯이 말하는 것도 친구이기 때문이다. 다른 자리에서, 다른 사람이 정말 그런 문제로 불평을 한다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을 일이다. 그 회사가 돈을 잘 번다고 다른 회사 직원의 월급까지 올려줄 수야 없지 않은가.

 이 이야기가 떠오른 건 공무원연금 때문이다. 공무원은 박봉이라서 연금은 그 보상이라고 한다. 세금으로 적자를 메운다고 너무 나무라지 말라는 것이다. 필자도 공무원에 대한 처우는 최대한 잘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공서비스 개선과 청렴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사기업이 월급을 주는 수준을 수익의 크기에 맞출 수밖에 없듯이 공무원의 월급은 재정 수준에 맞출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연금은 국고에서 나가는 월급과 별개다. 연금 자체의 문제다. 연금을 개혁하려는 건 공무원이 ‘갑(甲)질’을 한다고 벌을 주려는 것도 아니다. 그 친구의 말처럼 ‘이제까지 갑질 했으니 연금은 적게 받으라’는 게 아니다.

 사실 공적 연금 중 빨간불이 먼저 켜진 건 공무원연금이다. 1993년 398억원의 첫 적자를 냈다. 김영삼 정부가 개혁하려 했으나 저항에 부딪쳐 어정쩡한 손질만 했다. 김대중 정부도 보험료율을 올리는 시늉만 했다. 오히려 ‘연금 적자를 국고에서 메워주는 조항’을 집어넣고 폭탄 돌리기를 계속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국민연금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욕을 먹으면서 밀어붙였다. 하지만 공무원연금은 ‘신중’했다. 국민연금을 담당한 유시민 장관과 공무원연금을 담당한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이 말다툼까지 벌였다. 결국 국민연금만 손을 댔다. 이명박 정부도 응급조치만 해 다음 정부로 떠넘겼다.

 공무원연금을 다루는 데는 두 가지 장애가 있다. 하나는 공무원이고, 또 하나는 정치인이다.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훨씬 많지만 뭉치기 어렵다. 세금이 자기 주머니에서 나간다고 실감하는 국민이 드문 거나 마찬가지다. 반면에 100만 명의 공무원과 그 가족은 집단행동을 한다. 그 표가 무서워 정치인은 눈치를 본다.

 연금정책을 다루는 것도 결국 공무원이다. 적자를 전망하는 것도 공무원이고, 학자들에게 관련 연구 프로젝트를 맡기는 것도 공무원이다. 의도는 없었겠지만 적자 연금을 설계한 것도 직업공무원이었다. 공무원연금도 고친다고 약속하며 국민연금을 손질해 놓고 이제와 모르쇠 잡는 건 도리가 아니다.

 어떤 이는 연금은 사회보장 문제인데 왜 재정 문제로 변질시키느냐고 따진다. 맞는 말이긴 하다. 지금 받는 연금으로도 노후 보장이 어렵다. 그런데 그마저 깎겠다고 달려드니 반발할 만하다. 그렇지만 그 돈은 어디서 가져오나. 많이 받는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많이 내는 것도 이야기해야 한다. 능력도 안 되면서 선진국형으로 나눠주기만 하면 어떻게 될지 뻔하다. 베이비부머들이 사라지기까지 받는 돈을 더 올리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래도 모자라면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국민연금은 깎아놓고 공무원연금 적자를 메우기 위해 또 세금을 더 내라고 할 건가. 일부 공무원의 주장처럼 국민연금도 올리나. 그 돈은 또 어디서 가져오나. 결국 우리 자식들에게 재앙이다.

 사실 공적 연금의 장점은 두 가지다. 우선 사적 연금보다는 수익성이 높다. 국민연금을 깎았지만 아직 민간연금보다 수익성이 좋은 편이다. 또 한 가지는 부도날 염려가 없으니 안전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생겼다. 처음 약속한 대로 주지 못하겠다고 중간에 계약을 바꾸면 신뢰가 무너진다. 그런데 그게 누구 책임인가.

 사실 93년 처음 빨간 신호등이 켜졌을 때 제대로 고쳤다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2000년에만 고쳤어도, 2007년 국민연금과 함께 바꾸기만 했어도 기득권을 최대한 보장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개혁에 따른 고통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93년으로부터 21년, 2007년으로부터 7년, 장고(長考)하느라 지각하는 바람에 누적된 부담을 한꺼번에 짊어지게 됐다.

 내년에는 선거가 없다. 정치인이 조금은 자유롭다. 과거 정권마다 ‘충분한 검토’를 한다며 미루고, 또 미뤘다. 그때마다 발목을 잡은 건 공무원들이다. 또다시 ‘충분한 시간’을 요구하는 건 ‘필리버스터링’이다. 시간을 끌면 고통만 커질 뿐이다.

김진국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