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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보도된 범인검거 내용을 대하고 우선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설마 그럴수가…하고 말이 막혔다. 심한 배신감과 함께 구토층마저 이는 것이었다.
「스티븐슨」의 소설『지킬박사와 하이드씨』에서 선량한 의사이면서 극악의 무뢰한이 되곤하던 이동인격자의 표본이 바로 제자를 유괴 살인하고도 태연해 교직에 몸담아온 인면수심 주영형이었다. 이래서 현실은 소설보다도 더 기구하다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어딘가에 살아 있어주기를 바랐던 윤상군을 잃고 우리 모두 가슴이 아프다.
그 부모의 상처는 어떤 표현으로도 위로가 못 될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않는다는건 이번 경우 해당되지 않는다. 그죄도 밉고, 죄인 역시 결코 동정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오늘은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다고 탄식하더라는 어느 교육자의 한마디에 눈시울이 더워지는건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제자의 목숨을 돈과 바꾸려는 끔찍한 범행을 계획하고 저지른 범인의 정체가 교사였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가 이른바 일류대학을 나온 엘리트요 한집안의 젊은 가장이었다는데서 「돈이 무엇이 길래」하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돈이란 인간생활을 영위하는데 소용되는 필요불가결의 물질이긴 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진 정당한 소득이 아닌 헛된 욕심을 부리는데서 인간파멸을 초래하는 경우를 흔하게 보아왔다. 그 정도의 이생판단을 할 수 있었을 고등교육 수혜자의 상식을 초월한 범죄를, 다만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사회문제로 연결시켜 통탄해야 할 것인지, 정신감점을 해야 할 일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목숨만큼 귀한게 없다는 걸 생각하는 사회가 되어야겠다. 내목숨이 귀한것처럼 남의 목숨도 귀하다는 걸 생각하면 다시는 어떤 형태의 인명을 해치는 살인범죄도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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