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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의 지적에 무심코 한 말을 사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유치원 선생들 고새이 많던데요.』
하루가 마무리되는 시간에 남편과의 대화였다.
『엄마, 선생이 뭐예요, 선생님이지.』
선생님한테는 좋은 말을 써야 한다며 딸아이의 항의가 들어왔다.
아차, 잘못했구나. 20대 안팎의 젊은 선생님. 내 눈에는 아무리 어리ㅔ 보여도 딸아이에게는 가장 훌륭하고 예쁜 선생님이다.
『엄마두 우리 선생님처럼 파마 좀 해요. 얼마나 예쁘다구.』
『우리 선생님이 그러는데, 사는 거보다 엄마가 만들어 주는 음식이 제일 좋은 거래. 』
『맞아. 우리 선생님도 그렇게 말했어. 』어느 70세된 노인이 젊디젊은 선생님에게 깍둣이 예절을 지키던 일이 생각났다. 선생님은 사람을 가른치는 가장 존귀한 분들이기 때문에 그만큼 예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물며 내 소중한 딸의 마음과 지식을 일깨우는 분에게 「님」자를 빼고 「선생」이라니.
아이들의 언어습관은 엄마의 말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는데 큰 실수였다.
딸아이에게 사과하면서 나는 내심 고맙다. 존경하는 스승이 있는 동안 그 삶은 흔들리지 않고 흐려지지 않으리라.
버스 안은 학생들로 가득했다.
무한한 가능으로 풍요한 젊음, 몸짓과 목소리는 마냥 싱싱해 덩달아 내 혈관도 뛴다. 나무들의 새순, 새싹들의 어여쁨이 절실해지면 벌써 한고비 넘은 세대라던가. 사념도 잠시, 참새들처럼 재잘거리는 대화가 흥미를 끌었다.
『×××말야, 순 얌체야]『××는 어떻구?』
친구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선생님 이야기다. 이야기는 꼬리를 잇는데 내 귀는 좀처럼 편안해지지 않는다. 선생님의「님」자정도가 아니라 아예 이름뿐인가 하면 듣기 민망한 말까지 나온다. 숙제물을 너무 많이 내주어서 깍정이가 되고, 숙제물을 내주지 앉는다고 얌체가 된 선생님들. 그들 선생님들은 오늘도 무언가를 심어주려고 했을 텐데, 그들 말대로라면 그 학교에는 자질이 문제시되는 교사들만 모여있는 셈이된다. 일부러 교표를 들여다보는 체하는데도 아랑곳없다.
조카가 놀러왔다.
『너회 선생님 아직도 깍정이니?』
『아니, 참 좋은 분야]
학기초 담임 선생님이 순 깍정이라던 조카는 머리를 긁적인다. 성적이 좋아져서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선생님이 좋아져서 성적이 좋아졌는지, 아마 그 둘이 다 맞을거라는 조카.
좋아하니 잘하게 되고. 잘하고 보니 칭찬을 받고, 칭찬을 받으니 칭찬해준 이가 좋아지는 귀결.
칭찬 잘해 준다는 그 선생님께도 조카에게도 참 고마운 일이다. <서울도봉구월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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