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선생들 고새이 많던데요.』
하루가 마무리되는 시간에 남편과의 대화였다.
『엄마, 선생이 뭐예요, 선생님이지.』
선생님한테는 좋은 말을 써야 한다며 딸아이의 항의가 들어왔다.
아차, 잘못했구나. 20대 안팎의 젊은 선생님. 내 눈에는 아무리 어리ㅔ 보여도 딸아이에게는 가장 훌륭하고 예쁜 선생님이다.
『엄마두 우리 선생님처럼 파마 좀 해요. 얼마나 예쁘다구.』
『우리 선생님이 그러는데, 사는 거보다 엄마가 만들어 주는 음식이 제일 좋은 거래. 』
『맞아. 우리 선생님도 그렇게 말했어. 』어느 70세된 노인이 젊디젊은 선생님에게 깍둣이 예절을 지키던 일이 생각났다. 선생님은 사람을 가른치는 가장 존귀한 분들이기 때문에 그만큼 예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물며 내 소중한 딸의 마음과 지식을 일깨우는 분에게 「님」자를 빼고 「선생」이라니.
아이들의 언어습관은 엄마의 말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는데 큰 실수였다.
딸아이에게 사과하면서 나는 내심 고맙다. 존경하는 스승이 있는 동안 그 삶은 흔들리지 않고 흐려지지 않으리라.
버스 안은 학생들로 가득했다.
무한한 가능으로 풍요한 젊음, 몸짓과 목소리는 마냥 싱싱해 덩달아 내 혈관도 뛴다. 나무들의 새순, 새싹들의 어여쁨이 절실해지면 벌써 한고비 넘은 세대라던가. 사념도 잠시, 참새들처럼 재잘거리는 대화가 흥미를 끌었다.
『×××말야, 순 얌체야]『××는 어떻구?』
친구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선생님 이야기다. 이야기는 꼬리를 잇는데 내 귀는 좀처럼 편안해지지 않는다. 선생님의「님」자정도가 아니라 아예 이름뿐인가 하면 듣기 민망한 말까지 나온다. 숙제물을 너무 많이 내주어서 깍정이가 되고, 숙제물을 내주지 앉는다고 얌체가 된 선생님들. 그들 선생님들은 오늘도 무언가를 심어주려고 했을 텐데, 그들 말대로라면 그 학교에는 자질이 문제시되는 교사들만 모여있는 셈이된다. 일부러 교표를 들여다보는 체하는데도 아랑곳없다.
조카가 놀러왔다.
『너회 선생님 아직도 깍정이니?』
『아니, 참 좋은 분야]
학기초 담임 선생님이 순 깍정이라던 조카는 머리를 긁적인다. 성적이 좋아져서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선생님이 좋아져서 성적이 좋아졌는지, 아마 그 둘이 다 맞을거라는 조카.
좋아하니 잘하게 되고. 잘하고 보니 칭찬을 받고, 칭찬을 받으니 칭찬해준 이가 좋아지는 귀결.
칭찬 잘해 준다는 그 선생님께도 조카에게도 참 고마운 일이다. <서울도봉구월계동>서울도봉구월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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