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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죄 가중처벌 액수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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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뇌물 액수에도 물가변동률을 적용해야 하는가.

공무원의 금품수수를 처벌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의 기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형법(129조)은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직무와 관련해 재물을 받거나 약속받을 경우 징역 5년형 이하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특가법(2조)은 뇌물의 액수에 따라 1000만~5000만원 미만일 경우 '5년 이상 징역', 5000만원 이상일 경우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형'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박세환 의원 등 국회의원 11명은 지난 1월 "뇌물 액수 기준에 물가변동률을 반영해야 한다"며 특가법 개정 법률안을 국회 법사위에 제출했다. "1990년에 비해 물가는 두 배 이상 뛰었는데도 특가법상 뇌물죄 기준이 너무 낮아 가혹하다"는 것이다.

박 의원 등은 1000만원인 하한 금액을 3000만원으로,10년 이상 징역형의 대상이 되는 '5000만원 이상'이란 기준을 '1억원 이상'으로 각각 상향 조정하자고 제의했다.

특가법상 뇌물죄 처벌 규정은 66년 법이 제정된 이래 80년과 90년 두 번 개정됐다. 제정 당시 50만원이던 가중처벌 최소 금액은 80년에 200만원, 90년 개정 때 1000만원으로 올랐다. 또 10년 이상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뇌물 액수는 같은 기간 500만원에서 2000만원, 5000만원으로 각각 조정됐다. 10년 단위로 2배 이상씩 기준이 높아진 셈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최근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지만 부패 추방을 염원하는 국민의 법 감정에 배치된다"며 반대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의견은 엇갈린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1000만원 이상만 받으면 무조건 5년 이상 징역형을 구형해야 한다는 자체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도 "정상참작 등을 이유로 형벌을 감경해주기 때문에 특가법에서 규정한 형량의 절반 이하로 선고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면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는데, 공무원이 뇌물을 받으면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최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전 부장 윤모(50)씨가 특가법 2조에 대해 낸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서울고법 형사1부는 기각했다. "형벌 체계상 균형을 잃을 정도는 아니다"라는 이유였다. 한양대 오영근(형법학), 고려대 하태훈(형법학) 교수는 "현행 특가법은 물가변동률을 반영하지 못하는 등 비현실적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에 접수된 특가법상 뇌물 사건은 2002년 314건, 2003년 271건, 지난해 266건 등이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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