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빛 좋은 개살구?' 지자체 주판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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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전력공사 유치 경쟁을 벌였던 지방자치단체들이 고민에 빠졌다. 한전이 배치되는 곳에는 '한전+2개 유관기관'만 가도록 이전 대상 공공기관 숫자가 확 줄었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는 공공기관 10~15개가 이전된다. 그래도 덩치가 큰 한전 유치를 고집할지, 아니면 다른 공공기관을 여러 개 받는 것이 나을지 저울질이 필요한 상황이다.

◆ 한전 유치, 실익 적을 듯=지난해 한전의 지방세 납부액은 185억여원으로 대한주택공사(87억원), 한국도로공사(80억원), 한국자산관리공사(41억원) 등에 비해 월등히 많지만 2위의 한국토지공사(171억원)보다는 14억여원 많을 뿐이다. 따라서 한국토지공사 등 대규모 기관 한 곳을 포함해 10~15개 중소 규모 공공기관을 유치하는 것이 '한전+2개'를 유치하는 것보다 낫다는 계산이 나올 수 있다. 유력한 2개 관련 기관으로 알려진 한전KDN과 한국전력기술의 지난해 지방세 납부액은 8억여원, 23억여원에 불과하다.

정부 관계자는 "2개 관련 기관을 한전 자회사로만 단정할 수 없다"며 "한국남동발전 같은 한전의 발전 자회사나 특수법인인 한국전력거래소도 한전과 함께 이전할 기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전수거물센터와 연계해 배치될 것으로 알려진 한국수력원자력(34억원)을 제외하면 한전 관련 다른 기관들의 법인세 납부액도 2억~8억원 정도다. 어느 기관이 포함되든 '한전+2개'의 효과는 비슷하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중요한 직원 숫자에서도 한전 유치가 꼭 유리한 것은 아니다. 한전의 본사 정원은 1125명이지만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이들이 모두 이사 가기는 어렵다. 수도권에 있어야 할 부서는 잔류할 수밖에 없고, 본사를 사업본부 체제로 쪼개 일부만 이전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한전+2개' 방안이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수 있다는 의미다.

◆ 한전 희망하는 곳 없을 수도=지금까지 거의 모든 지자체가 한전 유치를 희망했다. 그러나 '한전+2개' 방안이 확정되면서 유치 경쟁이 3파전으로 압축되는 모습이다. 정부 관계자는 "대구.울산.광주 세 곳 정도만 유치를 강력히 원하고 있으며, 다른 지역은 방향을 틀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유치를 희망하는 시.도가 한 곳도 없는 최악의 상황까지 점친다. 이로 인해 대규모 공공기관 이전 지역에서 제외된 제주도가 한전을 유치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달 24일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논의된 '한전+1개' 방안이 '한전+2개'로 바뀐 것도 한전의 매력이 지나치게 낮아졌다는 지적이 잇따랐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그동안 한전 유치를 강력 희망했던 A지사는 이날 "한전 등 3개사를 제외한 나머지 174개 기관을 놓고 검토해야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 혁신도시 입지 경쟁도 치열=정부는 수도권과 충남.대전을 제외한 11개 시.도에 혁신도시를 건설할 계획이다. 혁신도시라는 이름은 공공기관이 입주해 지역 혁신을 선도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이날 정부와 시.도는 공공기관을 가급적 여러 곳에서 흩뿌리지 않고 혁신도시에 집중 배치한다는 데 합의했다. 시너지를 높이고 지역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힘을 모아주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각 시.도는 지역 안에서 어느 곳에 혁신도시를 세울지를 놓고 다시 한바탕 씨름을 해야 할 상황이다. 지역 내 경쟁도 치열하기 때문이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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