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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함 광고하려면 선수 때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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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대학 시절, 선후배와 함께 산에 갔을 때의 일이다. 밥이랑 찌개를 끓여 배부르게 잘 먹긴 했는데 먹고 남은 쓰레기를 버릴 곳이 없었다.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누군가 "돌무덤을 쌓자"고 했다. 그거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면서 우리는 열심히 돌을 가져다 쓰레기 위를 덮었다. 쓰레기더미는 훌륭한 돌탑으로 변했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한 선배가 돌탑을 보고는 파안대소했다. 그러다 곧 정색을 하더니 "돌을 치우고 쓰레기를 갖고 내려가자"고 했다. 우리는 궁시렁거리면서 돌을 치워야 했다.

만약 그대로 뒀다면 쓰레기는 곧 악취를 풍겼을 것이고, 악취의 진원지가 돌탑 아래에 숨겨져 있는 사실을 몰라 치우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름다운 산을 오염시켰다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 선배가 고맙다.

올해 프로로 전환한 배구계가 선수 구타 사건으로 시끄럽다. 성적이 나쁘다고 대회 도중 감독이 선수들을 때린 사실이 인터넷에 올라 문제가 됐고, 결국 해당 감독 2명은 징계를 받았다.

그런데 그 징계가 '솜방망이 징계'라 또 구설에 올랐다. 한국배구연맹은 각각 6개월과 3개월의 감독 자격정지를 내렸다. 하지만 다음 시즌은 12월에나 가야 시작된다. 비시즌 동안의 자격정지. 결국 실효가 없는, '무늬만' 징계를 한 셈이다.

선수 구타는 한국 스포츠계에 만연된 일이다. 학교 운동부에서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들을 때리는 건 다반사다. 실업팀, 심지어 프로팀에서도 구타 사건은 종종 일어난다. 이번에 배구가 문제가 됐지만 다른 구기 종목이나 기록경기 종목에서도 구타는 심심찮게 일어나 소동으로 번지곤 한다.

그러나 선수를 때리는 사실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때리는 사람들이 오히려 '구타의 효율성'을 예찬하는 이상한 분위기다. 이번 사건이 불거졌을 때도 주위의 반응은 "안 때리는 감독이 어디 있나" "때릴 때마다 선수들이 10㎝는 더 점프를 하는데…" 등이었다.

구타의 본질은 성적이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선수 구타는 물론이고, 그보다 더한 것(심판 매수도 여기에 포함된다)에도 유혹을 받는다. 감독이나 코치는 물론 책임자(학교라면 교장, 팀이라면 구단주나 사장)들도 이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 구타 정도는 짐짓 모른 체하기도 하고, 문제가 커져도 질끈 눈을 감아버리기도 한다. 솜방망이 징계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맞는 선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맞으면서 운동하기는 싫다'며 운동을 중단하거나 선수가 되기를 포기한 유망주가 얼마나 많은가. 프로선수 중에는 자식을 키우는 엄마.아빠 선수도 많다. "어렸을 때부터 하도 맞아 이젠 이골이 났다"는 선수도 있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한탄하는 쪽도 있다.

'구타의 효율성'은 있다. 우선 당장 성적은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은 썩는다. 돌무덤 아래 쓰레기처럼. 정말 그 조직을, 그 팀을 아끼고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선수를 때려서 얻은 성적에 좋아할 일이 아니다.

더 분명히 하자면 구타는 무능의 증거다. 게으름의 결과다. 선수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지도자, 선수를 장악하지 못하는 지도자, 노력하지 않는 지도자가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수단이다. 선수를 때리는 지도자는 '나는 무능한 지도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대학 시절, 선후배와 함께 산에 갔을 때의 일이다. 밥이랑 찌개를 끓여 배부르게 잘 먹긴 했는데 먹고 남은 쓰레기를 버릴 곳이 없었다.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누군가 "돌무덤을 쌓자"고 했다. 그거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면서 우리는 열심히 돌을 가져다 쓰레기 위를 덮었다. 쓰레기더미는 훌륭한 돌탑으로 변했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한 선배가 돌탑을 보고는 파안대소했다. 그러다 곧 정색을 하더니 "돌을 치우고 쓰레기를 갖고 내려가자"고 했다. 우리는 궁시렁거리면서 돌을 치워야 했다.

만약 그대로 뒀다면 쓰레기는 곧 악취를 풍겼을 것이고, 악취의 진원지가 돌탑 아래에 숨겨져 있는 사실을 몰라 치우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름다운 산을 오염시켰다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 선배가 고맙다.

올해 프로로 전환한 배구계가 선수 구타 사건으로 시끄럽다. 성적이 나쁘다고 대회 도중 감독이 선수들을 때린 사실이 인터넷에 올라 문제가 됐고, 결국 해당 감독 2명은 징계를 받았다.

그런데 그 징계가 '솜방망이 징계'라 또 구설에 올랐다. 한국배구연맹은 각각 6개월과 3개월의 감독 자격정지를 내렸다. 하지만 다음 시즌은 12월에나 가야 시작된다. 비시즌 동안의 자격정지. 결국 실효가 없는, '무늬만' 징계를 한 셈이다.

선수 구타는 한국 스포츠계에 만연된 일이다. 학교 운동부에서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들을 때리는 건 다반사다. 실업팀, 심지어 프로팀에서도 구타 사건은 종종 일어난다. 이번에 배구가 문제가 됐지만 다른 구기 종목이나 기록경기 종목에서도 구타는 심심찮게 일어나 소동으로 번지곤 한다.

그러나 선수를 때리는 사실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때리는 사람들이 오히려 '구타의 효율성'을 예찬하는 이상한 분위기다. 이번 사건이 불거졌을 때도 주위의 반응은 "안 때리는 감독이 어디 있나" "때릴 때마다 선수들이 10㎝는 더 점프를 하는데…" 등이었다.

구타의 본질은 성적이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선수 구타는 물론이고, 그보다 더한 것(심판 매수도 여기에 포함된다)에도 유혹을 받는다. 감독이나 코치는 물론 책임자(학교라면 교장, 팀이라면 구단주나 사장)들도 이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 구타 정도는 짐짓 모른 체하기도 하고, 문제가 커져도 질끈 눈을 감아버리기도 한다. 솜방망이 징계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맞는 선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맞으면서 운동하기는 싫다'며 운동을 중단하거나 선수가 되기를 포기한 유망주가 얼마나 많은가. 프로선수 중에는 자식을 키우는 엄마.아빠 선수도 많다. "어렸을 때부터 하도 맞아 이젠 이골이 났다"는 선수도 있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한탄하는 쪽도 있다.

'구타의 효율성'은 있다. 우선 당장 성적은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은 썩는다. 돌무덤 아래 쓰레기처럼. 정말 그 조직을, 그 팀을 아끼고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선수를 때려서 얻은 성적에 좋아할 일이 아니다.

더 분명히 하자면 구타는 무능의 증거다. 게으름의 결과다. 선수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지도자, 선수를 장악하지 못하는 지도자, 노력하지 않는 지도자가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수단이다. 선수를 때리는 지도자는 '나는 무능한 지도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손장환 스포츠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