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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위, 행담도개발과 MOU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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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행담도 개발사업 의혹에 대해 국민경제자문회의 정태인 사무차장(당시 동북아시대위원회 기획조정실장)은 25일"지난해 7월 동북아시대위원회가 서남해안 개발사업(S프로젝트)을 위해 행담도개발㈜과 사업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정 차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올 1월엔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이 건설교통부 등 관계자와 함께 싱가포르 총리를 만나 양국의 전략적 협력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싱가포르는 동남아의, 한국은 동북아의 허브로서 IT.리조트 분야에서 적극 협력한다는 내용이 담긴 양국 정상 간 친서도 오갔다"고 말했다.

MOU의 내용에 대해서는 "서남해안 프로젝트의 컨셉트 페이퍼를 행담도개발㈜ 비용으로 만들고, 동북아위는 도로 위치, 땅값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칼빈 유 싱가포르대사와 문 위원장이 토론할 때 행담도는 파일럿 프로젝트(시범사업)임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정 차장은 "언론이 행담도 개발을 사기극으로 몰고 있으나 (S프로젝트에) 500억 달러의 자본유치 계획이 있고 싱가포르는 2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했다"면서 "행담도 의혹은 밝혀져야 하나 그 문제로 인해 싱가포르 정부를 대리하는 김재복 행담도개발㈜ 사장과 유 대사에게 나쁜 영향이 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동석한 이정호 동북아위 기조실장은 "현재 총리(이해찬)가 S프로젝트를 관장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에서 제시한 구체적이고 개방적 아이디어가 우리처럼 단단한 국가에 제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 등을 국토연구원에서 타당성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은 "지난해 여름 주한 싱가포르대사가 면담을 요청, 김재복 사장과 함께 청와대로 들어와 내 사무실에서 만났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서남해안 개발 사업을 보고했는지에 대해선 "지난해 11월 동북아시대위원장 보고 때 배석했는데 그때 행담도 얘기는 없었고 서남해안 개발 구상의 가능성 등이 거론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청와대 김만수 대변인은 "동북아시대위가 행담도 개발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무리나 실수가 있었다면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면서도 "서남해안 개발은 균형 발전 실현을 위해 추진되는 것으로, 계속돼야 하며 사업의 신뢰도가 손상되거나 외자 유치에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이날 정찬용 전 수석과 정태인 차장을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은 이날 김재복 사장을 불러 사업 추진 배경 및 도로공사와의 불평등 계약 체결 경위 등을 조사했다.

이정민.강갑생 기자

[뉴스 분석] "대통령 역점 사업" 오버했을 수도
실세들 명분 집착 … 업자들에 휘둘려

행담도 개발사업에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 정태인 국민경제자문회의 사무차장(전 동북아위 기획조정실장)등 현 정부 실세들이 대거 관여한 사실은 두 가지 구조적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는 대통령의 역점사업일수록 대형 스캔들이 이어지게 마련이라는 점이다. '서남해안권 개발'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첫 거론됐으나 별 진전이 없었다. 김대중 정부 때는 서해안고속도로의 준공과 함께 활기를 띠는 듯했으나 역시 큰 진척은 없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노무현 대통령은 '국토 균형발전'과 '동북아 중심 국가'의 개념을 정권의 전략적 목표로 강조했다. 호남.충청을 찾을 때마다 노 대통령은 이런 목표를 동시에 풀어줄 해법으로 '서남해안권 개발'을 제시해 왔었다

그러나 우리의 권력 문화에서 대통령 역점 사안으로 포장된 사업은 '한 건'의 실적을 꾀하는 관료들의 공명심을 자극하곤 했다. 여기에 사업가들이 비집고 들어와 이들과 유착하고 부조리가 생길 가능성은 더더욱 커진다. 벤처산업 진흥을 내걸었던 김대중 정부에서 '진승현.정현준 게이트'가 터진 이유였다.

행담도개발㈜과 도로공사의 분쟁 중재에 나섰던 정찬용 전 인사수석은 "서남해안 개발은 국토균형발전과 낙후된 호남 발전을 위해 필요한 사업이라 나선 것"이라며 "그런 좋은 일은 앞으로도 할 것"이라고 했다. 지원의향서를 써주었던 문정인 위원장도 "행담도 개발이 성공할 경우 서남해안 투자유치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은 사태의 발단이 된 도로공사의 불공정 계약 내용은 김재복 행담도개발㈜ 사장을 알게 된 한참 뒤 알았다고 했다. 대통령 역점사업이라는 명분에 함몰된 나머지 앞뒤를 가리는 신중함을 잃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 또한 노 대통령이 국가에너지위원회를 만들고 자원개발 외교에 전력하던 틈새에서 벌어졌다. 대통령 역점사업일수록 부패.부조리의 예방.감시 시스템이 철저해야 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두 번째는 주로 집권 3년차 들어 대형 의혹 사건이 터진다는 대목이다. 정현준.진승현 게이트 등의 권력형 비리가 터진 시점도 DJ 집권 3년차인 2000년이다. 권력층의 긴장 강도가 서서히 이완되고, 현 정권 이후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게 되는 시점이다. 행담도 사업과 관련돼 현재 고위층의 사적 이익 관련 의혹이 제기된 것은 문 위원장의 아들이 행담도개발㈜에 취직한 대목뿐이다. 향후 조사에서 사업자와의 유착에 따른 사적 이익 부분은 가장 철저히 가려져야 할 부분이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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