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스팀청소기 한경희 사장 "여자인 게 한스러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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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태어난 게 한이었다."

자기 이름을 내건 '한경희 스팀 청소기'로 청소기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경희(41) 사장은 지난 6년간 사업을 하면서 겪은 가장 큰 장벽으로 자신이 '여성'이었다는 점을 꼽았다.

한 사장은 스팀으로 걸레질을 대신하는 청소기를 내놔 지난해 매출 150억원을 올렸다. 또 벤처 대상을 수상하고, 신지식인에 선정되는 등 나름대로 성공한 여성 기업인이다. 최근엔 여성들에게 사업가의 꿈을 펼쳐 보라는 내용의 '청소 안 하는 여자'(랜덤하우스 출간)라는 책도 냈다. 지난해부터 스팀청소기가 홈쇼핑에서 잘 팔리고 있으니 사업을 시작(1999년)한 지 5년 만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처럼 성공한 여성기업인이 스스로 '여성의 한계'을 말하는 것은 여성용 상품을 개발한 여성 사업가가 겪는 현실적 어려움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청소기를 유통하는 것부터 어려웠다고 한다. 남자들이 주축인 유통업체들은 청소용품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진공청소기로 청소하고 왜 또 물걸레 청소를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데만 몇 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다행히 홈쇼핑에서 스팀청소기가 불티나게 팔렸다. 한 사장은 "잘 안 팔릴 거라고 고개를 내저었던 이 상품이 이렇게 팔리는 이유를 유통업체 사람들이 지금은 이해할지 궁금하다"고 했다.

중소업체 지원용 정책자금을 신청할 때도 '여성'은 걸림돌이었다고 한다. 정책자금을 신청하자 담당자는 "남편이 부도가 나서 대신 온 것 아니냐. 주민등록번호만 두드리면 모두 나온다"며 면박을 줬다. 여자가 사업하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보는 풍토가 요즘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 사장은 "남자들은 여러 인맥을 동원해 문제를 풀어가는데 여자들은 일일이 실력으로 증명해 보여야만 한다는 점도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한 사장은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스위스 IOC본부 직원과 교육부 사무관을 지냈지만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인맥은 한계가 있었다. 한 사장은 "사람은 끌어주고 밀어주고 키워주는 사람이 있어야 클 수 있다"며 "이젠 여자들을 돕는 길잡이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말 공장을 옮길 계획인 그는 공장에 보육시설을 만들고, 미혼모.편모 등을 고용해 자활의 터전을 마련해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창업하는 여성사업가들이 비빌 언덕이 되고 싶다는 것도 그의 꿈이다. 이런 꿈들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꼭 성공한 기업인이 돼야 한다는 것이 한 사장의 각오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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