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한잡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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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동네에 마땅한 산책로가 없는걸 아쉬워했더니 가까이에 호수가 있다는걸 일러주는 이웃분이 있었다. 이리로 이사온지 얼마 안돼서의 일이었다. 앞뒤 좌우로 온통 바라보이는 건 높은 아파트뿐인 동네에 호수라니, 헛소문만 같았지만 소문 치곤 로맨틱한 소문이어서 절로 미소 지어졌다. 한동안 호수 소문에 가슴을 설레다가 어느날 새벽 마침내 그곳을 찾아 나섰다.
뜻밖에 호수는 지척에 있었다. 마침 안개가 짙은 아침이어서 호수는 태고와같은 혼돈에 잠겨 있었다. 거기 호수가 있다는것 외엔 넓이도 모양도 헤아릴 길이 없었다. 콘크리트 바닥으로 된 산책로를 끼고 호수의 물레를 더듬는동안 해가 먼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햇살은 아직도 안개에 빼앗긴채여서 마치 보름달같았다. 호수도 웅덩이만큼 밖에 안보이던 시야가 서서히 트이기 시작하더니 어디선지 수 없는 새떼가 날아드는게 아닌가.
제비였다. 제비들은 일제히 수면을 향해 곤두박질쳤다가 아슬아슬하게 수면을 차면서 높이 비상해서 호수 상공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화려한 새가 아닌데도 날갯짓이 환희로와 보기에 매우 화려한 군무였다. 날씬하고 상큼하고 날렵한 모습을 예부터 물찬 제비에 빗대왔건만 제비에게 물을 차는 습성이 정말 있는줄은 몰랐고 더군다나 제비가 물을 차는 모습을 보기는 부끄럽게도 오십평생에 처음이었다.
돌아나오다가 보니 구색을 갖추려면 아직 아직 먼 호수가 안갖추어도 될 구색은 미리 갖추고 있었는데 그건 낚싯군이었다. 그것도 한두사람이 아니라 장장한 호수가에 심심챦게 모든 장비를 갖추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았는 낚싯군을 볼 수가 있었다. 물고기가 살기나 사는지, 산다고해도 그렇게 낚아올려도 되는지. 미완의 호수는 교통량이 많은 큰길과 인접해있고 호리병처럼 허리가 오므라든 위만해도 차량의 왕래가 빈번한 교량으로 돼있어서 곧은 낚시를 드리우고 다만 사색에 잠긴다해도 보기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호수를 한바퀴 돌아나오다 보니 게시판에 큰 글씨로 수영을 하지말것, 낚시를 하지말것등 금지사항이 써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의 낚시행위는 불법이었던 것이다. 불법행위란 크든작든 남의 눈을 속여가며 순식간에 해치우는 것인줄 알았는데 그들의 불법행위는 너무도 유연하고 눈에 띄었다.
그렇다고 그 행위자체가 유유자적하거나 대담해보였던 것도 아니다. 치사하고 옹졸하기 짝이 없어 가히 추악한 시민의 표본이 됨직했다.

<소설가> ▲31년 개풍출생 ▲서울대문리대수학 ▲70년여성동아장편소설당선 ▲81년이상문학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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