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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올드보이 OST 성공 비결? 독서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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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여러 영화제에서 다수의 음악상을 받은 조영욱 음악감독은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했다. 좋은 영화음악을 고르는 안목 역시 독서에서 나온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사진 주영한국문화원]

접속,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박쥐, 이끼,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 숨바꼭질, 군도.

 이들 굵직한 한국 영화의 공통점은 음악감독이 한 사람이란 점이다. 데뷔작인 1997년 ‘접속’ 이전의 그의 이력서에선 그러나 오늘의 그를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나마 연관 있는 경력이라고 해야 음반회사 3년 재직 정도다. 대학 전공도 행정학이다.

 최근 몇 년간 이런저런 영화제에서 음악상을 ‘수집’하고 있는 조영욱(51) 감독의 얘기다. 최근 주영한국문화원이 주최한 ‘한국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주빈으로 5일간 영국에 머물며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영국인들과 두루 만난 그에게 “어떻게 음악감독이 될 수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잠시 고개를 갸웃하곤 그저 “음악을 좋아했다”고 답했다.

 - 어느 정도로 좋아했기에.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판을 사러 돌아다녔다. 밤새도록 라디오를 틀어놓고 있었다. 학교 시간을 빼놓곤 눈뜨고 있는 시간은 모두 음악을 듣는 시간이었다. 음악을 좋아해서 음반회사에 취직했다. 그런데 회사원들이 하는 일이 다 비슷하지 않나. 매일 하는 일이 가사 번역이었다.”

 결국 3년 만에 관뒀다고 했다. 영화도 좋아했던 그는 광고회사에서 노래방 기기용 영상을 찍었다. 재야의 영화 고수들과 만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지금도 절친한 박찬욱 감독과 오동진 영화평론가 등이 그들이다.

 -‘접속’으로 데뷔했다.

 “정은임 아나운서가 하던 영화음악 프로그램의 작가를 잠시 했는데 명필름 심재명 대표의 동생이 시나리오를 들고 와선 ‘음악이 굉장히 중요하다. 조언을 해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러다 ‘아예 맡아서 하면 어때요’라고 했다. 그게 ‘접속’이었다. 크게 히트했고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흘러오게 됐다.”

 - 음악감독이라면 작곡도 해야하고 악기도 잘 알아야하지 않나.

 “악기들은 따로 공부했다. 작곡은 잘 안 하고(웃음) 주로 아이디어를 낸다.”

 - 뱀파이어 신부 얘기인 ‘박쥐’에서 바흐의 칸타타 ‘나는 만족하나이다’를 쓸 생각은 어떻게 했나.

 “잘 모르겠다(웃음). 나는 다른 사람보다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어서 시나리오를 보면서 ‘아 이건 어떻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지금도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듣는다.”

 - 좋은 영화음악감독이 되려면.

 “영화음악이 영화에서 하는 역할이 무엇일까 고민해야 한다. 곡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영화에 맞는 곡을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영화음악 하는 친구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해석·분석하고 새로운 걸 끄집어내려면 음표 적는 법만 알아선 안 된다고 한다. 인생을 알아야 한다. ‘한 달에 책을 얼마나 읽니. 영화음악도 책 많이 읽어야 해. 음악만 해선 안 돼’라고 말해주곤 한다.”

 실제 런던의 한 관객이 “‘신세계’와 ‘범죄와의 전쟁’ 둘 다 갱스터 필름인데 곡의 느낌이 왜 다른가”라고 묻자 그는 “‘신세계’는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에 대한 얘기이고 ‘범죄와의 전쟁’은 우리의 아버지들이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대한 것이다. 전혀 다른 개념이니 다른 방향으로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음악감독으로서 ‘괴로움’도 털어놓았다. “왈츠에선 늘 기쁨 속의 슬픔을 느껴 영화에 한 번 쓰고 싶었는데 그게 ‘올드보이’가 됐다. 올드보이가 성공하면서 큰 문제가 생겼는데 많은 감독들이 왈츠를 주문한다는 거다. 나는 정말 이제는 왈츠를 하고 싶지 않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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