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운동선수는 지원해 주면서 창업 엔지니어를 방치해서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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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실수를 하지 않는 게 최고의 덕목인 한 창업 벤처가 클 수 없습니다.” 성공한 벤처 1세대로 꼽히는 주성엔지니어링 황철주(55·사진) 대표의 지적이다. 바꿔 말하면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 대표는 “우리가 개인소득 3만달러 시대로 도약하기 위해선 기업이나 사회 전반에 팽배한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분위기부터 깨야 한다”며 “기업에선 최고경영자(CEO)가, 정부에선 대통령이나 장관이 나서야 그런 분위기를 깰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1995년 반도체 장비 회사인 주성엔지니어링을 세워 연매출 1500억원 대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이후 태양광·디스플레이 장비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이 과정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제품만 8개에 달한다.

 황 대표가 요즘 가장 열정을 쏟는 것은 청년들의 벤처 창업 지원이다. 그는 이미 2010년부터 자비 20억원과 정부 출연금 등 100억원을 투자해 만든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의 이사장을 맡아 청년들의 창업교육과 자금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동안 벤처 1세대들과 손잡고 청년창업가들에게 기술·경영 노하우를 전수하고, 전국 15개 창업선도대학을 돌며 기업가정신과 창업붐 확산에 공을 들여 왔다.

 지난 1일 주성엔지니어링 본사가 있는 경기도 광주에서 황 대표를 만났다. 황 대표는 “중국이 턱밑까지 쫓아와 반도체만 빼고 산업의 기술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데 우린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매일 싸움만 하고 있는 걸 보면 한숨만 나온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우리만의 정신이 없다보니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도 없고 결국 국론이 분열되고 맨날 싸움판만 벌어진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더 이상 내부 싸움으로 우리의 성장동력과 시간을 갉아 먹어선 안된다”며 “특히 새롭게 도전하고 창업하는 사람들부터 정부가 나서 보호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프로 운동선수는 보호하고 지원해도 창업하려는 엔지니어를 방치하는 게 바로 우리나라라고도 했다.

 그동안 우리 기업이나 국가는 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을 따라 배우며 개인소득 2만달러 시대까지 성장했다는 게 황 대표의 진단이다. 하지만 이제 기업이든 국가든 성장의 한계에 봉착했고 도전을 장려하는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고선 3만불 시대로 도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황 대표는 “지금까지는 실수 않고 남을 빨리 따라가는 게 최고였다”며 “이제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이 대우받아야 우리도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도전을 부추기는 문화와는 거리가 있다고 황 대표는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창업가나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지원시스템이 절대 부족하다”며 미국의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를 사례로 들었다. 현재 시가총액이 36조원에 달하지만 테슬라도 창업 후 13년간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는 것이다. 증시에 상장 후 3년간 적자면 상장이 폐지되는 국내 현실에선 테슬라 같은 기술 기업의 탄생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황 대표는 “테슬라는 적자였지만 기술력만 보고 13년간 투자자들의 꾸준한 투자가 이어져 오늘날 촉망받는 기술기업이 됐다”며 “우리 같으면 벌써 이름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더 늦기 전에 정부가 나서 창조인력이 실수를 두려워 않도록 보호해줘야 한다”며 “시장에만 내맡기고 나 몰라라해선 창업활성화도, 창조경제도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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