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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운동·환우회 활동 … 암 덕에 제 2인생 살게 돼 행복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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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암 발생률 2위 유방암. 예후가 좋아 ‘착한 암’으로 불린다. 5년 생존율이 90%를 넘는다. 단 ‘조기에 발견했을 경우’에 한해서다. 4기에 발견하면 대부분 5년 내에 사망한다. 생존율만큼 재발률도 높다. 가슴을 떼어내고 탈모를 경험하는 등 여성으로서의 상실감도 크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1만4000명에 달하는 여성이 유방암과 싸운다.

같은 질환이더라도 이겨내는 방법은 환자마다 다르다. 착하지만 안심할 수 없는 유방암, 이를 완치에 가깝게 극복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유방암 경험자 이순우(왼쪽)씨와 최경선씨는 암 투병을 계기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유방암이 삶의 전환점, 자신을 아끼는 계기 돼

“유방암입니다.” 6년 전 최경선(39·여)씨는 이 한마디에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두 언니를 유방암으로 잃은 터였다. 항상 가족력을 염두에 둔 탓에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언니처럼 나도 죽을 수 있겠다는 공포와 두려움이 밀려왔죠. 엄마한테는 차마 막내딸까지 유방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했어요.”

수술만 하면 끝날 줄 알았다. 유방암 1기였지만 암세포가 많이 퍼져 유방전절제술을 시행했다. 수술 후 급격한 상실감이 밀려들었다. “체격이 커서 가슴을 절제한 쪽과 다른 쪽의 차이가 확연했어요. 남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 밖에 나가지도 못했죠.” 누구에게 털어놓지도 못했다. 이를 악물고 참았던 감정들이 어느 날 한꺼번에 몰려와 수술 때보다도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그때 최씨가 찾은 건 유방암 환자를 위해 병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국립암센터를 통해 ‘텔레코칭(전화상담)’과 ‘연극치료’를 접했다. 힘들 때면 마니토(상담사)에게 전화해 길게는 1시간 동안 대화했다. 친한 친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속얘기를 늘어놓고 위안을 받았다. 연극치료를 통해서는 엄마에게 말 못했던 투병생활의 고통과 그로 인한 응어리를 모두 털어냈다. 그렇게 속내를 표출하니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자신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예전엔 앞만 보며 일과 가족에만 몰두했죠. 나 자신이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나를 위해 살아요. 여행도 하고, 영화도 보고, 먹고 싶은 거 먹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요. 힘들면 잠깐 쉬어가면 되죠 뭐, 결국 중요한 건 나니까요. 유방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아등바등하며 살았을 거예요.” 치료 후 생존 6년에 접어들어 약을 끊고 정기검사만 받고 있는 최씨는 완치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환우들과 서로 의지하며 원망이 긍정으로

11년 생존자 이순우(62·여)씨는 2003년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그때 당시만 해도 유방암은 ‘불치병’에 가까웠다. “왜 하필 내가 이런 병에 걸렸나 억울한 마음이 가득했어요. 오진이라고 믿고 싶었죠.” 이미 3기까지 진행된 상태여서 수술만으로는 부족했다. 8회의 항암치료, 33회의 방사선치료를 견뎌내야 했다. 수술 22일 만에 암세포가 다시 발견돼 재수술까지 받았다. 육체적·정신적인 고통이 극에 달했다.

그런 이씨에게 환우회는 안식처와 같았다. 2003년 국립암센터 유방암 환우 모임인 ‘민들레’ 활동을 시작했다. 이씨는 “같은 아픔과 고통을 겪는다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큰 힘이 됐다. 항암치료로 탈모가 온 환우끼리 목욕탕을 같이 가기도 했다”며 “일반인과는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반면 환우끼리는 10년지기 친구처럼 뭐든 잘 통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암 극복 노하우는 채식 위주의 식단과 꾸준한 운동이다. 자연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주말농장을 찾았다. 다섯 평 남짓한 작은 텃밭에 상추·토마토·오이 등 채소를 하나 둘씩 심었다. 직접 재배한 신선한 ‘유기농 채소’는 이씨의 식탁 위에 올랐다. 과일도 제철·오색과일로 챙겨 먹고, 물은 하루 1.5L 이상 마셨다. 평일에는 틈나는 대로 인근 호수공원을 찾아 하루 8㎞가량 걸었다.

이렇게 투병 11년이 지난 지금, 이씨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다른 암환자와는 다르게 무엇이든 먹을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으며, 일반인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 수 있어서다. “가슴과 머리카락이 없으면 어때요?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바랄 게 없지요.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암 덕분에 제2의 인생을 살게 돼서 행복하다고. 다른 암이 아닌 유방암에 걸려서 감사하다고.”

두 번의 수술·출산에도 담담하게 투병생활

“담담하게 버틴 것 같아요. 오히려 당당했죠.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지면 아예 삭발해 버렸고, 삭발한 채로 재즈댄스·수영 등 하고 싶은 건 다 했어요. 남들이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물으면 반문했죠. ‘내가 죄인도 아니고 아픈 것뿐인데 왜 못해?’라고요.” 2002년 유방암 진단을 받은 한경아(44)씨는 12년 생존자다. 암환자는 대개 위축되거나 무기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한씨는 오히려 씩씩했다. 온천 사우나실 앞에서 ‘항암 환자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보고 주인에게 한참을 따지기도 했다.

한씨는 갓 결혼한 30대 초반에 부분절제술을 하고 항암·방사선치료까지 했다. 문제는 임신이었다. 치료를 끝낸 지 6개월 만에 임신했다. 일반적으로 방사선치료 후 1년 이상은 피임을 권장한다. 기형아 출산의 우려 때문이다. 걱정은 됐지만 한씨는 유산 대신 출산을 택했다. 수술하지 않은 쪽 유방으로 모유 수유도 했다. 한씨는 “방사선치료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큰애가 발달장애가 있다”며 “하지만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큰애를 포기했더라면 그 애를 통해 느끼는 지금의 행복을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올 7월 또다시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12년 전 부분절제술 후 남은 부위에 암이 생긴 것. 8월 유방전절제술 후 항암치료에 들어간 한씨는 그럼에도 “다시 암에 걸려 절망스럽다는 생각보단 초기에 발견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물론 재발·전이·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이 치료의 방해 요인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다른 환우들도 저처럼 담담하게 병을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두 번 수술을 했지만 유방암은 충분히 극복하고 완치할 수 있는 질환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건강에 무심한 일반인보다 항상 건강을 체크하는 제가 더 오래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유방암 10년 생존자 위한 축하행사 마련

이처럼 다양한 사연을 지닌 유방암 환우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국립암센터가 15일 오후 2시 암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제1회 유방암 생존자 10년 축하행사’를 개최한다. 주인공은 유방암 치료 후 10년이 경과한 환자다. 물론 10년 생존을 향해 달려가는 환자도 참석할 수 있다. 국립암센터 의료진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촬영에 참여한 영화 ‘남남이 된다’가 상영된다. 의료진과 함께하는 토크쇼, 유방암 환우의 벨리댄스 공연도 펼쳐진다. 이번 행사를 준비한 국립암센터 이은숙 유방암센터장은 “환우들이 이겨낸 지난 10년의 시간을 격려하고 한창 치료 중인 환자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오경아 기자 도움말=국립암센터 이은숙 유방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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