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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 출석만으로도 기업 대외 신인도 타격 입는데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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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달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5명(이인영·우원식·은수미·장하나·한정애)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대자동차가 하청업체 근로자를 비정규직으로 ‘간접고용’한 건 불법이라는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온 직후였다. 이들은 “현대자동차가 항소하거나 직접 고용을 미룬다면 국정감사에 부르겠다”고 말했다. 10일 후인 2일. 이들은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신청했다. 아직 결론은 안 난 상태다. 4개월여 진통 끝에 임단협이 타결되면서 분위기를 다잡던 현대차에 비상이 걸렸다. 현대차 관계자는 “항소했다고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증인 신청을 하다니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올해 국감에서도 ‘기업인 줄소환’이 여전하다. 기업의 국감 스트레스가 다시 시작됐다. 정기국회 100일 중 한 달을 그냥 보내고, 법안 처리 기준으로 5개월 만에 문을 연 국회다. 2일 현재 김병렬 GS칼텍스 대표 등이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명시된 후속 투자 이행 문제로 증인이 되는 등 기업인 47명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동통신 3사는 최고경영자(CEO)가 영업보고서 경비 과다 계상 등의 문제로 일제히 출석 요구를 받았다. LG유플러스 이상철 부회장은 대법원 판결까지 난 중소기업과의 특허기술 도용 분쟁이 호출 이유 중 하나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의원 보좌관에게 증인 신청 사유가 우리와는 맞지 않는 분야라고 했더니 ‘영감님(국회의원)이 시켜서 하는 거라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답변이 돌아왔다”며 황당해했다.

 외국업체도 예외는 아니다. 12월 한국에서 첫 매장을 여는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코리아의 김한진 전무가 국내 기업과의 상생 문제로 증인 채택이 됐다. 다국적 제약회사 11곳도 증인 신청이 된 상태다.

 올해는 거의 모든 기업이 내수 부진과 수출 경쟁력 약화 등으로 최악의 실적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산적한 경제 현안을 챙겨 보는 데 시간을 쏟아도 모자랄 판인데, 국회가 기업인 소환에 지나치게 공을 들이는 느낌”이라고 비판했다.

 가 봐야 종일 대기하고 답변도 제대로 못할 게 뻔하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15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 감 에 출석한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대표가 그랬다. 그는 근로자 불법 파견 문제로 증인이 됐다. 그러나 정작 증인석에 앉자 다른 질문이 날아왔다.

 ▶김기준 새정치연합 의원=“재생 부품을 새 부품으로 속여 팔았다는 것 사실 아닙니까?”

 ▶박 대표=“제가 오늘 출석한 것은 근로자 불법 파견 때문인 것으로 알고 왔는데…. 좀 당황스럽지만 제가 아는 대로 말씀드리면….”

 ▶김 의원=“간단하게 답해 주세요.”

 김 의원은 10초 만에 박 대표의 말을 끊었다. 박 대표는 지난해 이런 식의 국감 출석을 세 번 했다.

 기업들은 ‘국감 손해’가 상당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국감에서 홍역을 치른 한 금융사의 부사장은 “국감 증인 채택 움직임이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면 고위 임원은 자리를 비워야 한다. 국감 출석만으로도 나쁜 기업 이미지가 생기므로 어떻게든 증인 채택을 막기 위해 학연·지연을 총동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증인 채택이 안 되면 감사 인사를 다녀야 하고 채택되면 답변 준비로 밤을 새운다”고도 했다.

 실제로 몇 년 전만 해도 10대 그룹에서 수십 명 규모의 ‘대관(對官) 업무’ 조직을 가동하고 있는 곳은 3곳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 6곳으로 늘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연구개발(R&D)에 투자해도 모자랄 판국에 대관 조직을 늘려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들도 자신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업인들을 국정감사장에 불러 윽박지르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관행부터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호 최고위원도 "매년 구태가 되풀이되면 국민이 폭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새정치연합 초선 의원은 “제대로 된 질의도 없이 돌려보내면서 국감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현예·천권필·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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