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내 삶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지난 2008년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은 이해인(69·사진) 수녀. 그간 수십 차례의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도 그가 머무는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와 서울을 오가며 활발한 시작(詩作)과 강연활동을 이어왔다. 그저 종교의 힘이려니, 했다. 하지만 그 역시 그저 한 인간이었다. 그는 “암에 걸린 걸 안 순간 만사가 귀찮아지고 어디론가 숨고 싶은 자폐의 유혹을 받았다”며 “공동체 생활을 하니 그럴 수 없어 마음을 길들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을 많이 했다”고 했다.

 6년 전 이해인 수녀는 부고를 발송할 30여 명의 명단을 직접 작성하고 암 수술실에 들어갔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죽음은 이후에도 그에게 가까이 머물렀다. 아니, 의식적으로 죽음과 가까이 했다.

그가 사무실로 쓰는 수녀회의 민들레 방 한쪽 서가에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등 죽음에 대한 책만 따로 모아놓았다. 죽음을 일상화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지난해 말엔 저작권 모두를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일임하고 장례식은 다른 수녀와 똑같이 소박하게 치른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해 공증까지 받았다. 그는 “후련하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시가 더 진솔하게 잘 쓰여진다며 최근 쓴 미공개 시 세 편을 江南通新에 보내왔다. ‘병원에서’와‘어느 날의 단상 1, 2’이다. 그 중 한 편을 소개 한다.

 

어느 날의 단상 1(이해인)

내 삶의 끝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질까

밤새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또 한 번 내가

살아있는 세상!

아침이 열어 준 문을 열고

사랑할 준비를 한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승리자가 되어

다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구하면서

지혜를 청하면서

나는 크게 웃어 본다

밝게 노래하는 새처럼

가벼워진다

 
이해인 수녀와 같은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유독 죽음 앞에서 담담한 사람들이 있다. 말기 간암 환자인 작가 복거일(68)과 딸과 아내를 연이어 암으로 떠나보낸 최철주(72)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이다. 이들의 남다른 죽음관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직접 물었다.

안혜리 기자·심영주 기자 hyer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