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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참사가 대한민국을 분열시키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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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인터내셔널 뉴욕타임스는 29일자 1면에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를 분석한 기사를 내보냈다. 참사 초기에는 유족과 슬픔을 같이하며 좀 더 안전한 국가를 만들어 가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세월호특별법 처리를 둘러싼 갈등이 커지면서 극심한 이념 분열이 벌어지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신문은 ‘한국을 단합시켰던 참사가 한국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은 29일 오후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가족들의 영정을 철수시켰다. 학생 유족 중심으로 운영되는 유가족 대책위에 대한 불만을 행동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들은 성명에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데 대해 걱정과 슬픔을 같이해 주신 국민에게 죄송하다’ ‘단원고 학생 대책위는… 자중하고 자중하여 주시기를 거듭 부탁합니다’고 밝혔다. 여야와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유가족까지 분열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지난 4월 전대미문의 참사가 벌어진 뒤 박근혜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며 철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정치권과 정부도 사회의 적폐를 청산하자고 외쳤다. 사람들은 미래세대가 보다 안전한 나라에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다섯 달이 지난 뒤 한국사회는 딴판으로 변했다. 진상 규명 주체에 수사·기소권을 주는 문제를 놓고 여야가 대립했고 국론도 팽팽하게 나뉘었다. 유가족 대책위가 단식투쟁을 택하자, 보수단체는 규탄집회를 열었다. 일각에서는 단식농성을 비웃는 ‘폭식투쟁’도 벌어졌다. 세월호특별법 때문에 일반 민생법안까지 발목이 잡혔다.

 최근 유가족 대책위의 일부 처신은 누가 봐도 부적절하다. 검증되지 않는 내용으로 새누리당 대표와 일반 유족을 결부시켰다. 대리기사 폭행에 대한 해명도 석연치 않다. 급기야 경찰이 유족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일반 유족의 성명대로 유가족 대책위의 자중과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사회 분열의 주요 책임을 유족에게 전가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박 대통령은 참척(慘慽)의 슬픔을 견디고 있는 유족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았다. 여야는 한심하고 허약한 수준의 조정능력을 보여 줬다. 일부 시민단체·진보진영은 유가족들을 화합이 아니라 분열의 장으로 유도하려 했다.

 우리 사회의 분열은 올 데까지 왔다. 지금의 분열은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제라도 각 주체는 아직 남아 있는 단합의 불씨를 살려내야 한다. 만약 최악의 상황에서 극심한 분열을 이겨 내고 단합을 이뤄 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거룩한 성공사례’를 갖게 된다. 이는 ‘안전 대혁신’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것이 300명 넘는 꽃다운 생명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