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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 넘는 전통시장 지원금 줄줄 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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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3년간 세금 3조3400억원이 투입된 전통시장 지원사업 자금이 곳곳에서 새어 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수억~수십억원을 들여 지은 시설을 쓰지 않고 버려 두는가 하면 이미 있는 주차장을 또 짓겠다고 수십억원의 예산을 타낸 뒤 다른 곳에 전용하기도 했다. 중소기업청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길정우(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전통시장 지원 세부 내역을 바탕으로 본지가 전국 25개 시장에 지원된 사업 내역을 현장 점검한 결과다.

 경기도 수원시 지동시장의 지상과 지하상가를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는 3년째 멈춰 있다. 정부와 수원시로부터 11억원을 받아 2010년 폐쇄회로TV(CCTV) 등과 함께 설치한 에스컬레이터다. 고장 난 게 아니라 시장 측이 작동을 중단했다. “가끔 넘어져 사고가 난다”는 이유였다.

에스컬레이터는 지동시장과 수원시가 “지하상가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신청해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지하상가는 지금도 에스컬레이터를 신청할 당시와 마찬가지로 수퍼마켓 하나와 작은 가게 4곳만 입점한 상태다. 40여 점포가 들어설 공간이 여태껏 비어 있고, 곳곳엔 내다버린 쓰레기만 가득하다. 서강대 임채운(경영학) 교수는 “시설이 시장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꼼꼼히 따지지 않고 퍼주기식 지원을 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충남 공주시 산성시장은 “주차장을 짓겠다”며 2009년과 2010년 2년에 걸쳐 73억원을 타냈다. 하지만 막상 이 돈으로 땅을 사들여 지은 건 주차장이 아니라 공원이었다. 산성시장은 그전인 2006~2008년 58억원을 받아 241대를 댈 수 있는 주차타워를 이미 지어 놓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또 주차장 예산을 신청해 승인받았다. 이상욱(52) 산성시장 상인회장은 “주차장으로 신청해야 예산 따내기가 좋다고 해서 그렇게 신청한 뒤 공원을 지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행 규정은 받은 예산을 이렇게 전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경북 경주시 성동시장은 2009년 1억3000만원을 받아 주차장 한쪽에 62㎡ 크기 화장실을 지었다. 화장실을 둘러본 한 건설업자는 “6000만원이면 지을 화장실”이라며 “대리석으로 꾸며도 1억3000만원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장 상인회 관계자 역시 “왜 이렇게 많이 들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2002년 시작한 전통시장 지원사업을 통해선 지금까지 1084개 시장에 세금 3조3400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아직껏 제대로 된 감사원 감사(특정감사)는 한 번도 없었다. 길정우 의원은 “영세 상인을 지원하는 사업이지만 그 재원에는 더 형편이 어려운 국민이 낸 세금도 포함돼 있다”며 “전면 감사를 실시해 새어 나간 돈을 확인하고, 앞으로는 세금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이도록 지원 대상 선정부터 사후 관리까지 체계를 새로 짜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윤호(팀장)·최경호·위성욱·윤호진·최종권 기자, 김호정(중앙대 광고홍보학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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