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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인간새' 세르게이 붑카 IOC 위원장 도전

중앙일보

입력

‘원조 인간새’ 세르게이 붑카(51ㆍ사진)는 지난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선거에 도전했다. 당시 갓 50세로 IOC에선 너무 젊은 나이인데다 유력 후보들이 이미 정해진 상황이라 무모한 도전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에겐 IOC를 개혁해 제2의 전성기를 열겠다는 야심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 9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IOC총회에서 그는 6명의 후보 중 5위를 하는데 그쳤다. 발표가 나오는 순간, 그가 찾은 건 운동화 한 켤레와 트레이닝복이었다. 총회 행사장을 튀어나가 전속력으로 달리며 마음을 추슬렀다. 돌아와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장 차림에 웃는 모습으로 신임 토마스 바흐 위원장 당선 축하연에 참석했다. 이런 그를 두고 “뼛속까지 스포츠맨”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장대높이 뛰기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그는 지난 26일 IOC위원이자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부회장으로 인천아시안게임에 참석했다. 그는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는 건 스포츠나 인생이나 매한가지”라며 싱긋 웃었다. 시종일관 자신에 찬 목소리로 답변하던 그는 조국 우크라이나 이야기가 나오자 “너무 가슴이 아프다. 하루빨리 평화가 찾아오길 빈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어 더 슬프다”라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다가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내게 서울은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전성기였던 80년대 초, 난 올림픽을 제외한 모든 경기를 석권했다. 올림픽만을 꿈꿨는데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소비에트연방과 동구권이) 불참을 결정했고 4년을 다시 기다려야 했다. 88년 서울올림픽은 내게 전부와도 같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금메달을 목에 걸어야 했다. 최종 시기에서 성공했는데, 당시 잠실 주경기장의 열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서울올림픽 금메달로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영웅이 됐다. 그의 은퇴식에서 레오니트 쿠츠마 당시 대통령은 “세계는 붑카 덕분에 우크라이나를 알게 됐다”고 추켜세웠다. 친러시아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 간의 충돌이 벌어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주엔 그의 동상도 서있다. 세계기록을 35회 갈아치운 그가 93년 수립한 최고 기록인 6m15㎝는 21년이 지난 올해 2월에야 깨졌다.

-은퇴 이후엔 IOC에 입성해 스포츠 행정가로서 활약 중이다. 같은 길을 꿈꾸는 김연아 피겨스케이팅 선수 등에게 조언을 한다면.

“운동만을 전부로 알고 살아왔던 선수들일수록 은퇴 후 공허함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선수로서의 경험을 스포츠계 발전으로 녹여내는 것은 엘리트 선수로서의 기회이면서 의무이다. 스포츠 행정이며 외교에 대해 계속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연아에게도, 또 다른 한국의 선수들에게도 문은 활짝 열려있다. 함께 IOC 회의장에서 만나길 기대한다.”

전수진 기자 suji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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