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처럼 대출 급증한 나라 치고 금융위기 안 겪은 곳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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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지 않은 성장률, 아슬아슬하게 부풀어 오른 금융대출, 모두들 불안하게 지켜보는 부동산 시장, 사회 결속력을 좀먹는 부정부패, 여기에다 홍콩에서 불어오는 민주화 바람까지. 중국 지도부가 풀어야 할 현안은 한둘이 아니다. 일단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반(反)부패 드라이브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 분위기다. 하지만 진정한 경제구조의 개혁보다 관료와 기업에 겁을 주는 데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의 정치·경제·사회적 고민을 현장에서 지켜본 밥 데이비스 월스트리트저널 중국경제 수석에디터는 그 현안들을 결코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3년간 중국경제 수석에디터로 활동하다 워싱턴으로 복귀하던 그가 세계경제연구원(이사장 사공일) 초청으로 방한해 지난 26일 중앙SUNDAY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중국과 같은 규모로 대출이 급증한 나라에선 예외없이 금융위기가 닥쳤다”며 “섀도 뱅킹(규제받지 않는 금융)과 연계된 부동산 버블이 중국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야심차게 출범한 상하이 자유무역지대(FEZ)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 "창고만 즐비하다”며 “개혁 방향에 대한 명확한 목표가 없으니까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섀도 뱅킹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다고 보나.

“엄청나게 심각한 문제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중국경제 보고서를 내놨는데, 지난 50년 간 들여다 본 43개국 중 4개국에서 중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대출 증가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 4개국은 모두 금융위기를 겪었다. 중국 당국도 섀도 뱅킹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대출 남발을 억제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하고는 있다. 그래서 그 증가세가 줄긴 했지만, 그 역시 아직은 경제성장률보다 훨씬 높다. 섀도 뱅킹 자체가 중국경제를 완전히 주저앉게 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여태까지 중국이 해 온 것처럼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부동산 시장 급락 가능성은.

“중국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철강산업, 가전산업 어디 하나 안 엮인 데가 없다. 다 더하면 중국경제의 4분의 1에 육박할 것이다. 입소문으로만 돌던 얘기들이 통계로 확정되고 있다. 얼마 전 파산한 디트로이트는 미국의 일부지만 디트로이트만 보고 미국경제를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 어느 도시에 가도 외곽에 빈 아파트 단지가 유령처럼 서 있다. 부동산 문제는 성장률에 직격탄을 내리꽂을 것이다. 올해 성장률이 7.5% 타깃에 못 미치면 문제가 더 악화될 거다. 정부가 돈을 더 주입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좋은 투자처가 아니라면 사람들이 투자를 안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중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금융상품이 없지 않나.

“중국 당국자들도 그래서 중국은 미국과 다르다고 위안을 삼는다. 하지만 그건 상황을 제대로 본 게 아니다. 중국인들은 돈을 친척과 친구들에게서 빌린다. 서로 엮인 정도가 어떻게 보면 미국보다 심각하다. 은행 시스템이 안 무너지더라도 부동산 문제가 한 번 발발하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것이다.”

-올해 성장 목표인 7.5% 달성이 가능할까.

“중국 당국은 금리를 낮출지 논의하는 등 성장 목표를 맞추기 위해 고생하고 있다. 그런데 성장 목표라는 것 자체가 괜한 짓이다. 달성을 못하면 주가가 떨어지고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 아닌가. 솔직히 7.5%와 7.3%가 뭐가 다른가. 사실 중국의 통계수치는 믿기도 힘들다. 지방정부에 목표를 하달하는 계획경제의 유산이다. 성장률이 낮아지면 실업률이 높아질 우려도 있다. 시스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지 숫자에 집착하는 건 의미가 없다.”

-시진핑 주석의 ‘부패와의 전쟁’이 화제다.

“장기적으로 좋은 일이고, 중국인들은 그의 정책을 진심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제개혁보다 관료와 기업에 겁을 주는 데 치중하는 게 문제다. 지방 관료들은 괜히 민영화에 나섰다가 민간업자에게서 돈을 받는다고 찍힐 수 있어 아무 것도 안한다. 소비심리도 위축돼 명품시계ㆍ고급자동차 구입도 확 줄었다. 반면 부패 혐의를 받은 사람은 반박이나 항소의 기회도 없이 99% 유죄 판결을 받는다. 부패를 척결한다는 소리는 요란하지만 함께 진행돼야 할 금융·법률 개혁은 진전이 없다.”

-최근 중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개발은행(NDB) 같은 중국 중심의 기구를 만든다는데 남미ㆍ아프리카 등지에도 이미 개발은행이 있다. 또 위안화가 더 국제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흥미롭게 지켜봐야 할 것은 IMF 같은 메이저 국제 금융기구의 지배구조를 중국이 바꾸겠다고 나설 가능성이다. 현재는 미국ㆍ유럽 중심인데 갑자기 중국에서 총재를 하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한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서 요구할 수도 있지 않겠나.”

-위안화가 달러 대신 기축통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내 손자의 손자 시대에나 가능할 법한 얘기다.”

-중국이 홍콩 행정수반을 사실상 임명하려고 해서 논란이다.

“미국과 영국 등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보인다. 물론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민주화 운동 중 하나다. 중국이 자국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타이완 사람들은 홍콩 사태를 보고 ‘중국, 정말 안되겠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영국이 실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많지 않다. 어떤 중국인들은 ‘영국은 홍콩을 100년 동안 식민지로 삼아놓고 무슨 민주화 얘기를 하느냐’고 한다. 중국은 경제적으론 대국이지만 민주화의 잣대로는 완전히 역행하고 있다. 홍콩은 고사하고 중국 자체의 민주화나 다당제는 말을 꺼내기도 무색하다.”

-상하이FEZ를 실패작으로 보는 이유는.

“거기 가면 창고 밖에 없다. 아주 전통적인 공단의 모습이다. 미국과 유럽의 은행들은 FEZ가 출범할 때 뭔가 기회가 열리지 않겠냐고 희망을 잔뜩 가졌다가 지금 어이없어 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FEZ에서 엑스박스(Xbox)를 수출하려고 했다. 중국에서 FEZ로 보내고 다시 중국으로 수출하는 방식을 생각했다. 그런데 론칭을 며칠 앞두고 마케팅에 문제가 있다며 내년으로 연기했다. 뭔가 규제당국과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다. FEZ에 가면 공단에 등록하라고 서류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졸졸 따라다닌다.

중국은 상하이FEZ를 통해 서구식 시스템을 추진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명확한 목표 없이 무작정 추진했다 뒷걸음을 치고 있는 모습이다. 나는 추진 자체에도 회의적이었다. 이미 홍콩이 있는데 진정한 개혁도 없이 뭘 더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FEZ안을 발표한 리커창 총리는 정작 오프닝 행사엔 참석하지 않았다. 시진핑과 손발이 안 맞았을 수도 있는데 지금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밥 데이비스
-1982년 월스트리트저널 입사
-워싱턴·브뤼셀·라틴아메리카 총국장, 국제경제 수석에디터
-99년 아시아·러시아 금융위기 분석기사로 퓰리처상 공동수상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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