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 검역관 공항 24시] "고열환자 나올라" 검역 때마다 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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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천공항은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과의 전쟁을 벌이는 최전선이다. 이곳이 뚫리면 국내에 사스 환자가 발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도 한다. 국제화로 사람의 이동이 잦아지면서 전염병의 이동도 순식간에 이뤄진다.

특히 세계 각국을 잇는 비행기가 수시로 들어오는 국제공항은 전염병을 전세계로 확산시키는 통로가 된다. 아시아의 허브(중심)공항으로 발돋움하려는 인천공항이 사스 검역에 전력투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4일 오후 3시27분 인천국제공항.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도착한 아시아나항공 OZ332편에서 승객 3백80명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 인천공항 검역소의 검역관 6명이 일제히 승객들의 체온을 측정하기 시작했다.

"36도, 36.5도…."

두 줄로 길게 늘어선 승객들과 검역관 모두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승객들은 스스로 두 줄로 늘어서 검역관들의 체온 측정에 협조했다. 8개월된 아들을 업고 입국한 김민정씨는 "아기의 온도를 재달라"며 아기옷을 젖혀 보이기도 했다.

검역관 이은희씨는 "여행객들로부터 '수고하신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때 마다 힘이 난다"고 말했다. 검사에 불응하는 사례는 아직 없다고 한다.

30여분에 걸친 체온측정 결과 다행히 사스 감염을 의심할 만한 38도 이상의 고열 환자는 나오지 않았다.

검역관 최은숙씨는 "불안하다. 사스 감염 환자를 실제로 맞닥뜨릴 수 있다는 생각에 늘 긴장하고 있다"고 했다. 최씨는 그러나 "사스 환자가 입국해 더 많은 사람을 감염시키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원래 검역소 사무실에서 행정업무를 담당했지만 지난달 16일부터 비상 근무체제로 전환하면서 현장에 투입됐다. 인천공항 검역소 직원은 소장을 포함해 총 52명.

평소에는 30명이 입국심사대 앞에 2명씩 앉아서 승객들로부터 검역질문서를 회수하는 수준의 검역활동을 벌였다. 나머지 인력은 청사에서 행정업무를 맡았다.

그러나 중국에서 사스가 확산하면서 현재는 최소한의 인력 3~4명만을 사무실에 남겨두고 모두 검역 현장에 투입돼 있다. 24명씩 2개조로 나뉘어 오전 9시 출근해 다음날 오후 6시까지 33시간을 연속 근무한다. 그래도 일손이 달려 3~4시간씩 연장근무가 이어지고 있다.

검역관들은 사스로 의심되는 고열환자에 대해서는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면접검사까지 실시하고 있다. 충분한 휴식 없이 벌써 40일째 강행군을 하다 보니 모두 지쳐 있는 상태다.

검역관들이 가장 바쁜 시간대는 오후 3시 무렵이다. 검역관 정창훈씨는 "중국에서 도착하는 항공기가 몰리는 오후 3시쯤에는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주말부터 베이징에 유학 중인 학생들이 대거 귀국하면서 사스 위험지역으로부터의 입국자들이 하루 평균 2천여명에서 4천여명으로 크게 늘었다.

심야에도 업무는 이어진다. 인천공항이 24시간 운영되다 보니 오후 11시나 오전 2시에 들어오는 비행기도 있다. 하루 평균 입국 항공기가 1백50여편에 달한다. 검역관들은 새벽에도 두평 남짓한 대기실에서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는 정도다.

김삼근 검역과장은 "직원들의 피로가 쌓여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24일부터 군의관과 위생병 36명을 지원받아 직원들의 휴식시간을 늘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검역관들은 "일도 일이지만 주변으로부터 은근한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불만이다. 김모씨는"퇴근 때마다 반갑게 맞던 아파트 경비원이 언제부턴가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눈인사만 보낸다"고 했다.

또 다른 김모씨는 "지난 주말 시댁에 집안행사가 있었는데 아예 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업무 특성상 사스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다 보니 주변사람들이 아예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한다.

특히 지난 18일 중국에서 입국한 임모씨를 면접 검사했던 검역관이 사스 의심 증세로 후송됐다는 보도가 나간 뒤에는 주변의 시선이 더욱 싸늘해졌다는 것.

검역관들은 또 공항 검역으로 사스 의심 환자를 모두 걸러낼 수 있을 것이란 시각에 대해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이종구 검역소 소장은 "해열제를 복용하고 입국하는 사례도 있다"며 "공항검역만으로 사스 환자를 1백% 걸러낼 수 있다고 보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의심증세가 나타나면 본인이 주소지 보건소에 신고하고 당국의 조치를 따르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인천=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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