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의 단수가 결정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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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37기 왕위전 본선리그 제2국
[제9보 (149~162)]
白·趙漢乘 6단 | 黑·柳才馨 6단

149의 맥점을 짚는 柳6단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그의 얼굴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다.

대마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는지 모른다. 분위기로도 흑 대마의 삶이 버겁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느 한순간, 아주 가볍게 방심에 젖어든 것이 결국은 이런 지옥을 불러왔다. 그 치열함, 뼈저림이 곧 바둑이다.

흐름을 탄 趙6단은 바람부는 대로 움직인다. 149엔 150, 151의 차단엔 152의 연결. 그다음 흑이 155로 탈출을 시도하자 156부터 죽 뚫어버린다.흑 대마가 이렇게 사망했다.

柳6단이 이 죽음의 코스를 묵묵히 간 것은 157과 159를 얻어내기 위해서다. 선수로 이 두수를 두어 백대마의 출구를 봉쇄한 다음 161로 두점을 살리면 이곳 백을 모두 잡을 수 있다.

백 대마도 다 죽는다면 계산은 어찌되나. 조금 전엔 이 바꿔치기라면 흑이 압승하는 형세였다. 하나 지금은 위쪽 흑 대마가 뚱뚱하게 살이 쪘다.

서로 뒷맛 없이 깨끗하게 잡힌다고 가정하고 집을 세어보면 흑집은 약 1백10집. 백집은 약 1백집. 백 선수라지만 승부를 점치기 어려운 형세다.

그러나 趙6단은 162라는 매우 간단하면서도 치명적인 해결책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이 수에 흑이 '참고도1'처럼 양단수하는 것은 백4로 꽃놀이패.

따라서 흑은 '참고도2'처럼 1로 따내고 백은 6으로 건너가게 된다. 여기서 흑은 A로 패를 걸 수 있지만 백엔 B쪽에 좋은 팻감들이 준비돼 있다. 흑은 패를 지는 날엔 C로 잡힌다.

柳6단은 여기서 돌을 던졌다. 사실 진즉에 흑D에 두면 백은 귀를 살리기 위해 E로 받아야 했다. 이 절대 선수마저도 행사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 흑의 불운을 말해준다.

이 대국을 지켜본 김수장9단은 이렇게 말했다.

"유재형6단과 대국하면서 이렇게 침착한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그러나 오늘 대국에선 때론 격렬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모든 게 상대적인가."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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